Deep Dive 기독교 변증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100년 전 과학자들이 받아들이지 않던 성경의 첫 문장은 오늘날 현대 우주론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성경의 첫 단어는 히브리어 ‘베레시트(בְּרֵאשִׁית)’, 곧 ‘태초에(처음에)’입니다. 창세기의 히브리어 제목도 바로 이 단어입니다.
이 짧은 첫 문장은 세 가지를 한꺼번에 선언합니다.
- 시간에 시작이 있었다 — ‘태초에’
- 공간이 만들어졌다 — ‘하늘’
- 물질이 생겨났다 — ‘땅’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이미 있던 재료가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지금은 “우주에 시작이 있다”는 말이 당연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이것은 과학계가 받아들이지 않던 생각이었습니다.
영원한 우주를 믿었던 과학자들
100년 전 주류 과학계는 우주가 변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해 왔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없이 이 같은 주장을 펼쳤고, 세상에 시작이 있다는 개념을 불편해했습니다. 세상에 시작이 있다는 성경의 선언은 과학과는 거리가 먼 종교적 이야기로 여겨졌습니다.
아인슈타인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1917년, 그는 자신의 일반 상대성 이론 방정식을 우주 전체에 적용했습니다. 그러자 우주는 가만히 있을 수 없고 팽창하거나 수축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그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방정식에 ‘우주 상수’라는 항을 덧붙여 우주를 억지로 멈춰 세웠습니다. 수학이 가리키는 방향보다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우주’라는 믿음을 택한 것입니다.
한 신부의 계산
우주의 시작을 처음 계산한 사람
조르주 르메트르 (Georges Lemaître)
벨기에 · 가톨릭 신부 · 물리학자
1927년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있는 그대로 풀어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면, 시간을 거꾸로 돌릴수록 우주는 점점 작아집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의 출발점에 이르게 됩니다.
같은 해 브뤼셀에서 열린 솔베이 물리학 회의에서 르메트르는 아인슈타인을 처음 만났습니다. 아인슈타인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당신의 계산은 정확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물리학은 끔찍합니다.알베르트 아인슈타인, 1927 · 솔베이 회의
그런데 불과 2년 뒤인 1929년,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미국 윌슨산 천문대의 망원경으로 놀라운 사실을 관측합니다.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르메트르의 계산이 관측으로 확인된 순간이었습니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우주 상수를 버렸습니다. 그리고 훗날 우주 상수를 넣은 것을 “내 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이 말은 오랫동안 지어낸 이야기라는 의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2018년 과학사학자들의 연구는 아인슈타인이 실제로 이렇게 말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결론지었습니다.
6년 만에 바뀐 아인슈타인의 평가
1933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 르메트르는 강연에서 자신의 ‘원시 원자’ 이론을 설명했습니다. 우주 전체가 아주 작은 하나의 덩어리에서 시작되었다는 이론이었습니다.
강연이 끝나자 청중석에 있던 아인슈타인이 일어나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지금까지 내가 들어 본 창조에 대한 설명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만족스러운 설명입니다.알베르트 아인슈타인, 1933 · 패서디나
6년 전 “끔찍하다”고 했던 바로 그 이론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시기 아인슈타인이 르메트르에게 사석에서 털어놓은 속마음입니다. 그는 원시 원자 이론이 ‘창조’라는 신학적 개념을 너무 많이 떠올리게 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증거는 받아들이면서도 그 증거가 가리키는 방향은 불편해했던 것입니다. 우주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과학자들에게 왜 그렇게 불편했는지를 잘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90년 만에 붙은 이름
오랫동안 이 발견은 ‘허블 법칙’이라는 이름으로만 불렸습니다. 2018년, 국제천문연맹(IAU)은 회원 투표를 거쳐 78%의 찬성으로 이 법칙을 ‘허블–르메트르 법칙’으로 바꿔 부르도록 권고했습니다. 국제천문연맹은 르메트르의 ‘지적 성실성과 지극히 중요한 발견’을 기리기 위해서라고 밝혔습니다.
우주의 시작을 처음 계산해 낸 사람이 성경을 믿는 신부였다는 사실이 90년 만에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입니다.
그래도 시작만은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들
허블의 관측 이후에도 많은 과학자들은 우주의 시작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영국의 천문학자 프레드 호일입니다. 그는 ‘정상 상태 우주론’을 주장했습니다. 우주가 팽창하기는 하지만, 빈 공간에서 새로운 물질이 계속 생겨나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이 늘 같은 모습을 유지한다는 이론입니다.
르메트르의 이론에 ‘빅뱅(Big Bang, 꽝 하고 터짐)’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도 호일입니다. 1949년 BBC 라디오에서 상대 이론을 깎아내리려고 쓴 표현이 오히려 그 이론의 공식 이름이 되었습니다.
호일은 훗날 우주의 정교한 구조를 연구하며 상식적으로 해석하면 어떤 초지성이 물리학과 화학과 생물학에 손을 댔다는 취지의 말을 남기고 무신론에서 유신론으로 돌아섰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우주에 시작이 있다는 것만큼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비둘기 똥을 치우다 발견한 증거
논쟁에 마침표를 찍은 것은 뜻밖의 발견이었습니다.
1964년, 미국 벨 연구소의 아노 펜지어스와 로버트 윌슨은 거대한 전파 안테나에서 사라지지 않는 잡음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안테나에 둥지를 튼 비둘기를 쫓아내고 배설물까지 닦아 냈지만, 잡음은 하늘의 모든 방향에서 똑같이 들어왔습니다.
그 잡음의 정체는 우주가 아주 뜨겁고 작았던 시절에 남은 빛의 흔적, 곧 ‘우주 배경 복사’였습니다. 두 사람은 1965년 이 발견을 발표했고, 197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모세오경만 있었어도 예측했을 결과”
흥미로운 것은 이 증거를 직접 발견한 과학자들의 반응입니다. 펜지어스는 1978년 3월 12일자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가장 좋은 자료들은, 내게 모세오경과 시편, 그리고 성경 전체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더라도 정확히 그렇게 예측했을 결과입니다.아노 펜지어스, The New York Times, 1978.03.12
1992년에는 NASA의 COBE 위성이 우주 배경 복사 속에서 은하의 씨앗이 된 미세한 온도 차이, 곧 ‘우주의 주름’을 처음 찾아냈습니다. 이 연구로 200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조지 스무트는 미국물리학회 발표 기자회견에서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것은 마치 하나님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천문학 백과사전 편집자 스티븐 마란은 “마치 창세기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스무트 자신은 이 말이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뜻은 아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우주의 시작을 직접 들여다본 과학자들이 저마다 창세기를 떠올렸다는 사실은, 그 발견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잘 보여 줍니다.
이 발견으로 정상 상태 우주론은 힘을 잃었습니다. 우주에는 시작이 있었고, 시간과 공간도 그때 생겨났다는 것이 오늘날 주류 우주론의 결론입니다.
- 1917아인슈타인, 우주 상수로 정적인 우주를 고수
- 1927르메트르, 팽창하는 우주 논문 발표
- 1929허블, 멀어지는 은하 관측
- 1933아인슈타인, 원시 원자 이론을 “가장 아름다운 설명”으로 평가
- 1949호일, BBC 라디오에서 ‘빅뱅’이라는 이름을 붙임
- 1965펜지어스와 윌슨, 우주 배경 복사 발표
- 1992COBE 위성, 우주 배경 복사 속 ‘우주의 주름’ 발견
- 2018국제천문연맹, ‘허블–르메트르 법칙’으로 개칭 권고
그렇다면 질문이 남습니다. 과학자들도 불과 수십 년 전에야 알게 된 우주의 시작을, 성경은 어떻게 첫 문장에 기록할 수 있었을까요?
무(無)에서 우주가 저절로 생겨났다?
우주에 시작이 있다면 다음 질문은 피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 우주를 시작하게 했는가?”
일부 과학자들은 하나님 없이 이 질문에 답하려고 합니다. 가장 적극적인 사람은 미국의 물리학자 로렌스 크라우스입니다. 그는 2012년 『무로부터의 우주(A Universe from Nothing)』라는 책에서 우주가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저절로 생겨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리처드 도킨스가 이 책의 후기를 썼고, 크라우스는 같은 주제로 수많은 강연을 했습니다.
빈 상자와 상자조차 없는 것의 차이
문제는 ‘무’라는 단어의 뜻입니다. 크라우스가 말하는 ‘무’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물리학에서 ‘양자 진공’이라고 부르는 상태입니다.
양자 진공에는 물질은 없지만 공간이 있고, 에너지가 끊임없이 요동치며, 물리 법칙이 작동합니다. 실제로 진공 속에서도 에너지의 흔적이 측정됩니다(카시미르 효과). 크라우스와 같은 입장의 학자들은 이 요동 속에서 입자가 잠깐 생겼다 사라지듯, 우주도 그렇게 생겨났다고 설명합니다.
| 항목 | 양자 진공 (빈 상자) | 무(無) (상자조차 없음) |
|---|---|---|
| 물질 | 없음 | 없음 |
| 공간 | 있음 | 없음 |
| 시간 | 있음 | 없음 |
| 에너지 | 끊임없이 요동침 | 없음 |
| 물리 법칙 | 작동함 | 없음 |
| 양자 진공은 무가 아니라 무언가입니다. 같은 단어로 부른다고 같은 상태가 되지는 않습니다. | ||
양자 진공은 ‘빈 상자’일 뿐입니다. 철학자와 신학자가 말하는 무(無)는 ‘상자조차 없는 상태’입니다. 공간도, 시간도, 에너지도, 법칙도 없는 상태입니다.
10억짜리 아파트와 10억 원의 빚
이들은 또 다른 논리도 제시합니다. 우주의 총에너지가 0이므로 우주는 사실상 ‘무’와 같다는 것입니다. 물질이 가진 양(+)의 에너지와 중력이 가진 음(−)의 에너지를 더하면 정확히 0이 된다는 계산입니다.
이것은 10억 원짜리 아파트와 10억 원의 빚이 있으니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순자산은 0일지 몰라도 아파트도, 빚도, 은행도, 계약서도 모두 실제로 존재합니다. 더하면 0이 된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물리학자들 사이에서도 나온 비판
이런 주장은 종교인들만 비판한 것이 아닙니다. 물리학 박사이자 컬럼비아대학교의 과학철학자인 데이비드 알버트는 뉴욕타임스 서평에서 크라우스의 책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크라우스는 완전히 틀렸고, 그를 비판하는 종교인과 철학자들이 전적으로 옳다.데이비드 알버트, The New York Times, 2012
크라우스 자신도 이 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물리학에서 말하는 무(無)는 더 이상 무가 아니다(Nothing isn’t nothing anymore in physics)”라고 말했습니다.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무’가 우리가 아는 무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입니다.
결국 “무에서 우주가 생겨났다”는 설명은 ‘무’라는 단어의 뜻을 바꾸었을 때에만 성립합니다. 질문이 해결된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뒤로 미뤄졌을 뿐입니다. 그 양자 진공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물리 법칙은 어디에서 왔는가
이 문제를 가장 솔직하게 마주한 사람은 터프츠대학교의 우주론자 알렉산더 빌렌킨입니다. 그는 뒤에서 다룰 ‘BGV 정리’를 함께 만든 학자이기도 합니다.
빌렌킨은 과학 대담 프로그램 〈클로저 투 트루스(Closer to Truth)〉에서 진행자 로버트 쿤과 대화하며, 총에너지가 0인 닫힌 우주라면 무에서 생겨날 수 있고 이것을 수학 공식으로 기술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세 가지를 차분히 따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 공간도 시간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 지금 우주에 적용되는 물리 법칙은 어디에 존재했습니까?
-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닫힌 우주’라는 조건은 무엇이 정했습니까?
- 아무것도 없는 곳에 수학 공식은 무엇을 대상으로 적용됩니까?
이 중 하나라도 존재한다면 그것은 이미 무(無)가 아니라 유(有)입니다.
실제로 로버트 쿤도 빌렌킨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양자 물리학과 일반 상대성 이론이 이미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빌렌킨은 이를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왜 이런 법칙이 있는지, 누가 이 법칙을 부여했는지는 깊은 미스터리이며 자신도 잘 모른다고 답했습니다.
칼텍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존스홉킨스대학교 교수로 있는 이론물리학자 숀 캐럴은 더 솔직합니다. 그는 같은 프로그램에서, 왜 완전한 무가 아니라 양자 물리학과 물리 법칙이 존재하느냐는 질문에 사실상 “왜 안 되겠는가(Why not?)”라는 답밖에 할 수 없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또 공간도 시간도 없는 상태에서 물리 법칙만 따로 존재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고, 우주와 물리 법칙은 하나의 ‘패키지’로 함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세계적인 물리학자들의 답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물리 법칙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압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는 물론이고, 공간과 시간과 물질이 있는 내 방에서도 아무 이유 없이 무언가가 생겨나는 것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존재하기 시작한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원인을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논리적으로 정리한 것이 ‘칼람 우주론적 논증’입니다.
세 줄로 정리하는 논증: 칼람 우주론적 논증
대표적인 기독교 철학자이자 변증가인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우주가 무(無)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칼람 우주론적 논증을 제시합니다. 내용은 단 세 줄입니다.
칼람 우주론적 논증
- 존재하기 시작한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
- 우주는 존재하기 시작했다.
- 그러므로 우주에는 원인이 있다.
이것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삼단 논법입니다. 1과 2가 참이면 3은 반드시 참입니다. 논리 구조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으므로, 남는 것은 두 전제가 사실인지 확인하는 일입니다.
전제 1 · 존재하기 시작한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
마술사가 모자에서 토끼를 꺼낼 때, 정말 마술사가 무(無)에서 토끼를 만들어 냈다고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린아이는 신기해하지만, 조금만 자라면 “어떻게 속였을까?” 하고 그 원인을 궁금해합니다.
설령 마술사가 정말로 토끼를 만들어 냈다고 믿더라도, 그 토끼에게는 원인이 있습니다. 마술사가 바로 그 원인입니다.
아무 원인 없이 무언가가 눈앞에 나타나는 것을 목격한 사람은 없습니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적도 없고, 상식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첫 번째 전제는 합리적이고 타당합니다.
전제 2 · 우주는 존재하기 시작했다
100년 전 주류 과학은 우주가 영원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 독립적인 근거가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근거 ① 팽창하는 우주. 앞에서 본 대로 은하들은 서로 멀어지고 있습니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 우주는 하나의 출발점으로 모입니다. 여기에 우주 배경 복사라는 ‘시작의 흔적’까지 발견되었습니다.
근거 ② 방전되지 않은 배터리 — 열역학 제2법칙. 이 근거는 특정 우주론 모델이 필요 없을 만큼 단순합니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무질서도(엔트로피)는 계속 증가합니다. 뜨거운 커피는 식고, 정리된 방은 어질러지고, 휴대폰 배터리는 쓸수록 닳습니다. 그 반대로 저절로 되돌아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주도 마찬가지입니다. 별은 연료를 태우며 빛을 내고, 그 에너지는 차가운 우주 공간으로 흩어집니다. 우주 전체의 ‘배터리’가 조금씩 닳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주가 영원히 존재해 왔다면, 이미 무한한 시간이 흘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배터리는 오래전에 다 닳아서, 모든 별이 꺼지고 우주 전체가 똑같이 차갑게 식은 상태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과학자들은 이것을 ‘열적 죽음’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지금 밤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습니다. 배터리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은, 충전된 시점, 곧 시작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근거 ③ BGV 정리. 2003년, 알빈 보드, 앨런 구스, 알렉산더 빌렌킨 세 물리학자는 ‘BGV 정리’를 발표했습니다. 우주가 역사 전체에 걸쳐 평균적으로 팽창해 왔다면, 그 우주는 과거로 영원할 수 없고 반드시 시작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급팽창 이론을 처음 제안한 앨런 구스는 2007년 논문에서, 우주는 미래로는 영원할 수 있지만 과거로는 영원할 수 없다고 못박습니다. 이 결론은 우리 우주가 수많은 우주 가운데 하나라는 ‘다중 우주’를 가정하더라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최근의 반론, 그리고 크레이그의 설명
물론 반론도 있습니다. 2023년과 2024년, 애리조나주립대학교의 데이먼 이슨, 조지프 레스네프스키, 폴 데이비스는 BGV 정리가 ‘평균 팽창 속도’를 계산하는 방식에 허점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과거로 영원히 이어지는 팽창 우주가 수학적으로 가능하다는 모델들을 제시했습니다.
크레이그는 2024년 11월 이 연구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BGV 정리는 ‘우주가 평균적으로 팽창해 왔다’는 단 하나의 조건에 기대고 있습니다. 이 조건을 피해 가는 예외 모델은 처음부터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 연구들은 그 예외의 범위를 다시 다듬은 것입니다.
- 선택지가 오히려 좁아졌다. 후속 연구(카바요-루비오 등, 2024)는 과거가 영원한 우주가 가능하려면 세 가지 중 하나여야 한다고 정리했습니다. 크레이그는 이것이 영원한 우주를 원하는 사람에게 남은 선택지가 극도로 제한되었다는 뜻이라고 지적합니다.
- 수학적 가능성과 실제 우주는 다르다. 이 모델들은 순수하게 수학적인 분석일 뿐, 실제 우주에서 가능한지는 다루지 않습니다. 크레이그는 이 모델들이 물리학의 기본적인 ‘에너지 조건’과 열역학 제2법칙의 확장판을 위반하는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또 이런 모델들은 관측 결과와 맞지 않거나, 결국 피하려던 우주의 시작을 다시 끌어들이게 된다고 지적합니다.
| 모델 | 내용 |
|---|---|
| 반등 우주 | 수축하다가 다시 팽창하는 우주 |
| 창발 우주 | 영원히 정지해 있다가 어느 순간 팽창을 시작한 우주 |
| 점근적 팽창 우주 | 과거로 갈수록 팽창 속도가 0에 한없이 가까워지는 우주 |
| 영원한 우주를 원하는 사람에게 남은 선택지는 극도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 |
종이 위에서 ‘불가능하지는 않은’ 모델을 만드는 것과, 그 모델이 실제 우주를 설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우주의 시작을 피하기 위해 관측 증거가 아니라 수학적 가능성에 기대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시작이 있다는 결론이 얼마나 단단한지를 보여 줍니다.
여기에 근거 ②의 열역학 논증은 이런 모델 논쟁과 관계없이 그대로 남습니다. 그러므로 우주에 시작이 있었다는 것은 현재 가장 합리적인 결론입니다. 두 전제가 모두 타당하므로, 우주에는 원인이 있어야 합니다.
그 원인은 어떤 존재인가
성경도 과학도 시간에 시작이 있었고, 이 세상이 존재하기 시작한 시점이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다른 점은 하나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 시작을 일으키셨다고 말하고, 과학은 그 원인이 아직 미스터리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 원인은 어떤 존재여야 할까요? 논리적으로 따라가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나옵니다.
| 특징 | 이유 | 창세기 1:1 |
|---|---|---|
| 시간을 초월 | 시간이 우주와 함께 시작되었으므로, 그 원인은 시간 이전에, 시간 밖에 있어야 합니다. | 태초에 |
| 공간을 초월 | 공간도 우주와 함께 생겨났으므로, 그 원인은 공간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 하늘 |
| 비물질적 | 물질도 우주와 함께 생겨났으므로, 그 원인은 비물질적이어야 합니다. | 땅 |
| 원인이 없음 | 그 원인에게도 시작이 있다면 또 다른 원인이 필요합니다. 최초의 원인은 영원한 존재여야 합니다. | 하나님께서 |
| 전능함 | 아무것도 없는 데서 우주 전체를 존재하게 했습니다. | 창조하시니라 |
| 인격적 | 영원한 원인에서 시작이 있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그 원인이 스스로 ‘결정’했다는 뜻입니다. | 하나님께서 |
| 우리는 이런 존재를 신이라고 부릅니다. | ||
마지막 특징은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합니다.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원인에서 어떻게 ‘어느 시점에’ 우주가 시작될 수 있었을까요? 원인이 기계적인 조건이라면, 조건이 갖추어진 영원 전부터 결과도 함께 있었어야 합니다. 물이 0도 아래로 내려가면 곧바로 어는 것처럼 말입니다. 영원한 원인에서 시작이 있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그 원인이 선택하는 존재, 곧 인격체라는 뜻입니다.
칼람 우주론적 논증이 곧바로 ‘성경의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까지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무신론을 부정하고, 이 세상에는 시간과 공간과 물질을 초월한 전능한 창조주가 있다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인 생각임을 보여 줍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이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창조주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과학적인 증거도 있을까요?
처음부터 정돈되어 있던 우주
앞에서 본 열역학 제2법칙은 한 가지를 더 알려 줍니다. 무질서도가 계속 증가해 왔다면, 과거의 우주는 지금보다 더 질서 정연했어야 합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우주는 더 정돈된 상태였고, 그 시작은 극도로 정돈된 상태였어야 합니다.
흔히 빅뱅을 거대한 ‘폭발’로 상상하지만, 빅뱅은 폭탄처럼 공간 속에서 터진 사건이 아니라 공간 자체가 늘어난 사건입니다.
그래서 진짜 질문은 “폭발이 어떻게 질서를 만들었는가”가 아닙니다. “우주의 출발점은 왜 처음부터 그렇게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었는가”입니다.
펜로즈의 숫자
2020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수학자 로저 펜로즈는 이 질문을 계산해 보았습니다. 그는 우리 우주와 같은 정돈된 출발점이 우연히 만들어질 확률을 약 1010123분의 1로 추정했습니다. 그는 이것을 우주론이 풀어야 할 역설과 같은 문제로 보았습니다.
1010123은 “1 뒤에 0이 10123개 붙은 수”입니다. 관측 가능한 우주 전체의 원자 수는 약 1080개입니다. 우주의 모든 원자 하나하나에 0을 하나씩 적어도, 이 숫자를 다 적을 수 없습니다.
카드 한 벌로 비유하면
새 카드 한 벌(52장)을 잘 섞었는데, 스페이드 A부터 하트 K까지 완벽하게 순서대로 놓여 있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이런 일이 우연히 일어날 확률은 약 8×1067분의 1입니다. 이것만으로도 누구나 “누군가 정리해 놓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펜로즈가 계산한 우주의 출발점은 이것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게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우연히 일어난다는 것은 확률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이 우연이 아니라 창조주의 놀라운 설계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도서관에 들어선 아이
아인슈타인은 인격적인 신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무신론자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1929년의 한 인터뷰에서 그는 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우리는 여러 나라 말로 쓰인 책들이 가득한 거대한 도서관에 들어선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아이는 누군가 그 책들을 썼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어떻게 썼는지는 모르고, 그 언어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가장 지성적인 사람조차 신을 대할 때 이런 태도라고 나는 생각합니다.알베르트 아인슈타인, The Saturday Evening Post, 1929
아이는 책들이 어떤 신비로운 질서에 따라 배열되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지만, 그 질서가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도 질서 정연한 우주 앞에서 ‘책을 쓴 누군가’를 느꼈던 것입니다.
상식으로만 생각해 본다면
과학자들은 자연 곳곳에서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관찰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설계처럼 보이는 것’, 곧 겉보기 설계라고 부릅니다.
과학이 연구할 때 자연적인 원인만 찾는 것은 하나의 방법으로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이 어느새 “자연 밖의 원인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바뀌면 문제가 생깁니다. 실험과 관찰을 하기도 전에 창조주의 가능성을 이미 지워 놓고 시작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증거가 결론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출발점이 결론을 정하게 됩니다.
방법론적 자연주의와 철학적 자연주의
자연적인 원인만 찾는 것은 연구의 방법입니다. 자연 밖의 원인은 존재할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증거 이전에 정해 둔 결론입니다.
그 결과, 설계처럼 보이는 현상을 반복해서 관찰하면서도 “언젠가 과학이 자연적인 설명을 찾아낼 것”이라고 기대하게 됩니다. 이 기대는 관찰에서 나온 결론이 아니라 일종의 믿음입니다. 그리고 연구의 목표도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밝히는 것에서, 창조주 없이도 설명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찾는 것으로 옮겨 갑니다.
숀 캐럴은 양자 진공에서 우주가 생겨나는 과정을 설명하며, 빅뱅의 원인을 설명할 수 있는 합리적인 후보들이 여럿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무엇이 맞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덧붙입니다. 게다가 이런 설명들은 우주에 시작이 어떻게 있을 수 있었는지에 겨우 답할 뿐, 그 시작이 왜 그렇게 정교하게 정돈되어 있었는지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과학자들이 실제로 무엇을 주장하는지 정확히 알고, 학교에서 배운 상식적인 논리로 차분히 따져 본다면 어느 쪽이 더 합리적인지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원인 없이 모든 것이 생겨났다는 설명과, 모든 것을 시작하게 한 원인이 있다는 설명 가운데 말입니다.
3,500년 전의 첫 문장
성경이 쓰이던 시대에도 세상의 시작을 이야기하는 고대 신화는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신화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세상을 만든 재료가 처음부터 이미 있었다는 것입니다.
| 문헌 | 처음부터 있던 것 | 신의 위치 |
|---|---|---|
| 에누마 엘리시 (바빌론) | 민물(압수)과 바닷물(티아마트) | 신들이 그 물에서 태어남 |
| 그리스 신화 | 혼돈(카오스) | 땅과 신들이 혼돈에서 나옴 |
| 창세기 1:1 | 아무것도 없음 | 하나님께서 시간·공간·물질을 창조하심 |
| 성경만이 재료조차 없던 상태에서의 시작을 말합니다. 20세기 과학이 도달한 결론과 같은 방향입니다. | ||
고대인 대부분에게 물질은 원래부터 있던 것이었고, 신들조차 그 물질에서 생겨났습니다.
성경은 전혀 다르게 시작합니다. 재료조차 없던 상태에서, 시간과 공간과 물질 자체가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우주 안의 어떤 것이 아니라 우주 밖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선언합니다. 이것은 20세기 과학이 수많은 반대를 넘어 결국 도달한 결론과 같은 방향입니다.
성경은 어떻게 과학자들도 불과 수십 년 전까지 몰랐던 우주의 시작을 처음부터 기록해 놓을 수 있었을까요?
우리가 ‘창세기’라고 부르는 책의 히브리어 제목은 ‘태초에’입니다. 그 제목과 첫 말씀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온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이심을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만물의 주인이시고, 모든 선과 악의 기준이 되시며, 모든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심을 함께 선포하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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