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발전할수록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지식은 점점 더 쌓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 지식들은 이 세상에 신이 없다는 무신론이 얼마나 설명력이 부족한 세계관인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히 이 세상을 창조주의 개입 없이 순수한 자연주의로만 설명하는 것은 확률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우주의 미세 조정, 최초 생명의 발생, 단세포에서 인간까지의 진화 — 이 모든 것이 우연히 일어났을 확률은 상식을 뛰어넘을 정도로 희박합니다.
제가 처음 이런 확률들을 알게 되었을 때, 이 사실만 알리면 많은 분들이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대부분의 무신론자들은 이 증거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그들의 논리가 더 우월해서가 아니라, 확률이라는 개념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잘못된 반론을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이 계산한 놀라운 확률들
1980년대 초, 영국의 저명한 천문학자 Fred Hoyle과 Chandra Wickramasinghe는 생명이 자연적으로 발생할 확률을 연구했습니다. 생명에 필요한 약 2,000개의 효소 단백질이 우연히 만들어질 확률이 10의 40,000승 분의 1이라는 결과에 도달했습니다. 이는 우주의 전체 역사 동안 어떤 곳에서도 일어날 수 없는 수준의 확률입니다. Hoyle는 이를 바탕으로 “생명의 기원에 지적 설계가 관여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는 이 확률을 “폐차장을 휩쓴 토네이도가 보잉 747을 조립하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물리학자 John Barrow와 Frank Tipler 역시 인간의 유전자가 자연적으로 배열될 확률을 극단적으로 낮은 수치로 계산했고, Carl Sagan조차 100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진 단백질 하나가 우연히 형성될 확률을 10의 130승 분의 1로 계산했습니다. 단백질 하나의 확률이 이 정도인데, 생명에는 수천 개의 단백질이 필요합니다. 흥미롭게도 Sagan 본인은 “무신론자는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알아야 한다. 무신론자는 신이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어떤 정의로 보면 무신론은 매우 어리석다(very stupid)”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신이 없다고 단정 짓는 것이 과학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렵다는 인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무신론 철학자 중 한 명이었던 Antony Flew는 이러한 과학적 증거들을 검토한 끝에, 2004년 공개적으로 창조주의 존재를 받아들였다고 발표합니다. 반세기 동안 무신론을 대변한 철학자가 과학적 증거 앞에서 입장을 바꾼 것입니다.
무신론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잘못된 반론들
이런 확률에도 무신론자들은 다양한 반론을 제기합니다.
첫 번째, 주사위 논증입니다. “주사위를 100번 던져서 특정 수열이 나올 확률은 극히 낮지만, 어떤 수열이든 반드시 나온다. 마찬가지로 확률이 아무리 낮아도 무언가는 일어난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이 반론에는 결정적인 오류가 있습니다. 확률이란 전체 시행 횟수 대비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성공 횟수의 비율입니다. 주사위를 100번 던지면 “어떤 수열이든 하나 나온다”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발생은 “아무 결과나 나오면 되는” 상황이 아닙니다. 생명이 기능하려면 매우 특정한 조합의 아미노산, 단백질, 유전 코드가 정확히 갖춰져야 합니다. 이것은 주사위를 던져서 아무 숫자나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미리 지정된 수열이 나와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두 번째, 로또 논증입니다. “확률이 극히 낮아도 매주 로또 당첨자가 나오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반론 역시 주사위 논증과 동일한 오류를 갖고 있습니다. 매주 로또 당첨자가 나오는 이유는 “누가 당첨되든” 당첨자가 나오기만 하면 성공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수백만 명이 동시에 구매하는 상황에서 누군가 한 명이 당첨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특정 한 사람을 미리 지정해놓고 “반드시 이 사람이 당첨되어야 한다”고 한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게다가 생명 발생 확률은 10의 40,000승 분의 1입니다. 관찰 가능한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의 총 수가 약 10의 80승 개라는 점을 생각하면, 10의 40,000승이 얼마나 상상을 초월하는 수치인지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낮은 확률의 사건을 가능케하는 수 많은 시도는 불가능하며 비교적 높은(?) 확률의 로또와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세 번째, 큰수의 법칙입니다. “충분히 많은 시도가 있다면 아무리 희박한 확률도 일어난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큰수의 법칙은 시행 횟수가 많아질수록 결과의 비율이 이론적 확률에 수렴한다는 것이지, 불가능한 사건이 반드시 일어난다는 뜻이 아닙니다. 10의 40,000승 분의 1의 확률을 실현하려면 우주의 나이와 크기를 수만 자릿수만큼 확장해야 하는데, 이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조건입니다.
확률이 말하고 있는 것
수학자들은 일반적으로 10의 50승 분의 1 이하의 확률을 가진 사건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봅니다(보렐의 법칙). 생명의 자연 발생 확률은 그 한계를 수만 배 넘어서는 수준입니다.
물론 누군가가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은 단순히 지적 논증만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필요한 영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확률적 증거들은, 이 세상이 맹목적인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지적인 설계자의 의도 아래 만들어졌음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권능과 신격은 창세로부터 분명히 보이며 만들어진 것들을 통해 깨달아 알 수 있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변명할 수 없느니라. — 로마서 1:20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이라는 성경의 선언이, 과학이 발전할수록 더욱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