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부터 가끔씩 십일조를 해야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아왔었는데, 개인적으로 십일조를 해야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이에 대한 괜한 오해가 생길수도 있어서 이에 대한 글을 쓰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지인에게 십일조에 대한 한 목사님의 설교 링크를 받고 들어보며 우리에게 십일조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십일조에 대해서 제 묵상을 나누면 좋을것 같다고 생각해서 글을 시작해 봅니다.
십일조를 받는 목사는 지옥에 간다?
제가 들은 설교의 제목은 “십일조 받는 목사는 지옥간다”였을 정도로 이 분은 십일조에 대해서 굉장한 반감을 갖고 계신 분이셨습니다. 목사님은 십일조의 폐단을 나열하면서 십일조를 하면 안된다고 말씀하셨고 십일조를 받는 목사들은 지옥에 간다는 무시무시한 선포(?)까지 하셨습니다.
물론 저는 이 분이 나열하신 십일조의 폐단 혹은 십일조 강요하고 이를 통해 부를 쌓는 목사님들이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저지르고 계시다는 사실에 동의합니다. 또 전통적인 기복신앙의 레퍼토리, 십일조를 하면 복을 받고 하나님께서 부를 부어주신다는 그들의 설교가 완전한 거짓이라는 것에도 동의합니다.
실제로 이행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교인 자격을 박탈하겠다는 내용의 정관을 도입했다는데 이는 복음을 이해하지 못한 교계 지도자들의 발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분의 설교를 좋아하지 않고 이 글을 쓰게 된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잘못된 논거들과 잘못된 사실 관계를 설교에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로 십일조를 하지 말아햐 하는 이유를 설명하시고 싶으셨다면 십일조를 잘못 사용하거나 십일조를 악용하는 분들의 반대급부로써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십일조의 원래 목적과 그 의미를 설명해 주시면서 그 것이 왜 성경에 맞지 않는지를 설명해 주셨어야 합니다. 물론 제가 들은 것은 여러개의 설교 중 서론만 들어서 오해하는 것일 수 있으나 그런 내용보다는 십일조를 잘못 가르치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십일조를 내면 안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에 이 분의 설교를 비판하는 형식을 벗어나서 제가 묵상하는 십일조에 대한 성경적인 해석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성경이란 무엇인가?
십일조에 대해 나누기 전에 우리는 다시 한번 성경이 어떤 책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쓰여진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잘못된 해석을 하고 잘못된 적용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은 이 글을 ‘십일조를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라는 율법적인 결론에 집중 하시겠지만 우리는 그런 육적인 패러다임, 행위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쓰여진 주 목적은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인본주의자들이 말하는대로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왜 쓰여졌을까요?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거니와 그것들은 곧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 <요한복음 5:39>
예수님은 성경 기록이 자신에 대해 증언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착해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는 책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예수님에 대한 증언이자 영생이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가는 책입니다.
아담과 이브, 가인과 아벨, 노아의 홍수, 아브라함, 요셉, 모세, 유월절, 율법, 여호수아 다윗등 성경에 나오는 인물과 사건은 예수님에 대한 예표로써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십일조에 대한 내용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십일조에 대한 구절들을 통해 예수님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첫 번째 십일조
성경에서 가장 먼저 십일조가 등장하는 장면은 롯이 가나안 다섯 왕들에게 끌려 갔을때 아브라함이 318명의 가솔들만 끌고 가서 그들을 이기고 롯을 구해오는 장면에 나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아브라함을 마중 나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살렘의 왕 멜기세덱이었습니다.
살렘 왕 멜기세덱이 빵과 포도즙을 가지고 나왔는데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을 축복하여 이르되, 하늘과 땅의 소유주 되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브람에게 복이 있을지어다. 네 원수들을 네 손에 넘겨주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 하매 그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니라. <창세기 14:18~20>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받는데 히브리서 기자는 멜기세덱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니라. 그가 왕들을 살육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그를 축복하였으며 아브라함도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첫째로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또한 살렘 왕이니 곧 화평의 왕이라.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혈통도 없고 날들의 시작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오직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되어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히브리서 7:1~3>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의 뜻은 의의 왕이고 살렘은 우리가 샬롬이라는 말을 잘 알듯이 평강이란 뜻으로 화평의 왕이 됩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되어… 라고 표현하며 항상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있다고 말합니다. 이 설명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한 분이 있는데 그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즉 멜기세덱은 예수님의 예표이며 그가 포도주와 빵을 들고 나온 모습을 통해 이는 더욱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우리가 성찬식을 통해 기억하는 예수님의 공로와 십자가 우리가 먹고 마셔야 하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멜기세덱이 갖고 나온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치는 모습은 믿음을 가진 우리가 예수님께 십일조를 바치는 모습에 대한 예표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왜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치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멜기세덱이 말한대로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이긴 것이 아브라함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적들을 아브라함의 손에 넘겨 주셨음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당시 근동 지방의 가장 강력한 왕들 다섯을 맞아 겨우 318명을 끌고 승리했습니다. 이는 마치 300명의 군사만 이끌고 나가서 미디안에 승리한 여룹바알 기드온의 이야기를 떠올리는데, 말도 안되게 불리한 전쟁에서 승리한 아브라함은 이 전쟁이 분명히 하나님의 도움으로 승리한 것임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은 십일조를 바치며 모든 공로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으며 우리가 십일조를 바치는 의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모두 예수님의 것이며 우리의 모든 것 특히 내 자신이 예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표시로 전체의 10분의 1을 예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신약에서 십일조를 냈거나 내야 한다는 구절이 없다고 말씀하시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7장 8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여기서는 죽는 사람들이 십일조를 받으나 저기서는 살아 있다고 증언을 얻은 이가 받느니라. <히브리서 7:8>
현재 형으로 쓰여진 이 구절에서 우리는 히브리서가 쓰여진 신약 시대에도 성도들이 십일조를 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십일조를 내느냐 아니냐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는 그 십일조를 실제로 받는 분이 살아 있다고 증언을 얻은 이 즉 예수님이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율법에서의 십일조는 이런 히브리서 기자의 구약 해석을 확증해 주고 있습니다.
레위인들이 받는 십일조
출애굽 이후 하나님께서는 각 지파에게 땅을 분배하십니다. 하지만 레위 지파는 땅을 분배받지 못합니다. 대신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의 상속 재산이라는 선포를 듣습니다.
주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의 땅에서 상속 재산도 갖지 못하고 그들 가운데서 아무 몫도 갖지 못하리니 내가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네 몫이요, 네 상속 재산이니라. 보라, 내가 레위 자손이 섬기는 일 곧 회중의 성막에서 섬기는 일로 인하여 이스라엘 안에서 모든 십분의 일을 그들에게 상속 재산으로 주었느니라. <민수기 18:20~21>
그리고 그 성막에서 섬기는 일로 이스라엘 안에서 모든 10분의 1을 상속 재산으로 받습니다. 즉 율법으로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은 십일조를 해야했고 그 십일조는 레위인들의 몫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레위 지파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봐야 합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모세는 레위지파 출신이며 아론과 그의 자손들은 제사장 직을 맡게 됩니다.
출애굽 때에 이집트 백성들은 10가지 재앙을 겪게 되는데 특히 마지막 재앙인 장자의 죽음은 그 중 가장 혹독한 재앙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재앙을 피해가게 됩니다.
어떻게죠?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예수님을 예표하는 유월절 양을 잡아 피를 문지방에 바르면 죽음이 그 집을 피해갔기 때문입니다. 어린 양의 희생으로 죽어야 할 사람이 죽지 않게 된 것… 그것이 유월절의 의미이며 십자가의 예표입니다.
이집트의 장자가 죽고 출애굽을 시작할 때 하나님께 한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처음 난 모든 것 즉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를 여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그것은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출애굽기 13:1~2>
즉 원래 열 번째 재앙에 죽었어야 하는 모든 짐승과 사람들을 거룩히 구별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 후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대신해서 레위 지파를 거룩히 구별한 하나님의 것으로 받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처음 난 모든 자 대신 레위 사람들을 취하고 또 그들의 가축 대신 레위 사람들의 가축을 취하라. 레위 사람들은 내 것이 되리니 나는 주니라. <민수기 3:45>
지금 하나님께서는 또 레위 사람들을 이용해서 예수님의 대속을 보여주고 계시며,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아브라함처럼 이스라엘 나머지 지파들은 자기들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소유가 된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 십일조를 바치고 있는 것이며, 레위 지파는 이 그림에서 우리를 위해 대속물이 되신 예수님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곳
십일조에 대한 구절을 찾아보면 특이한 표현이 있는 구절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주 너희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한 곳을 택하시리니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거기로 가되 곧 너희의 번제 헌물과 너희의 희생물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 헌물과 너희가 주께 서원하는 최상의 모든 서원 헌물을 가지고 가서 <신명기 12:11>
주 네 하나님 앞에서 곧 그분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즙과 기름의 십일조를 먹고 또 네 소 떼와 양과 염소 떼의 처음 난 것을 먹으며 이로써 주 네 하나님 두려워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신명기 14:23>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한 곳을 택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그 곳에서 십일조와 모든 서원 헌물을 드리라고 하십니다.
그곳은 간단하게 설명하면 예루살렘입니다.
그의 아들에게는 내가 한 지파를 주어 내가 나를 위해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도시 예루살렘에서 내 종 다윗에게 등불이 항상 내 앞에 있게 하리라. <열왕기상 11:36>
재미있지 않나요? 왜냐하면 멜기세덱이 왕으로 있던 살렘 땅이 바로 예루살렘이며 그곳에 하나님의 성전이 지어지고 그 곳에서 모든 제사가 행해지기 때문입니다. 또 역사 속에서 수 많은 민족, 종교인들이 예루살렘 때문에 싸우고 다투며 하필이면 그 중에서도 지금 이슬람 성전이 있는 그 자리를 두고 모두가 다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십일조는 그곳에서 드려야 한다고 하나님이 특별하게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 이 역시 무엇을 예표하나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예수님께 아름답다고 자랑하던 성전은 사실 그 성전 자체가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정말로 아름다운 성전인 예수님을 알아보라고 주신 것인데 사람들은 성전에 매료되어서 진짜 성전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질 것이라고 하셨고, 헤롯이 46년간 보수했던 성전을 무너뜨리면 자시이 3일만에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 날 수 많은 기독교인들 특히 지도자들은 성전이 아름답지 않냐던 예수님의 제자들과 똑같이 예수님을 보고 복음을 이해하라고 명하신 십일조에 대해서 오해하고 곡해하며 이를 통해 잘못된 복음을 전하고 많은 사람들을 두배나 지옥 자식 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십일조의 진정한 의미는?
많은 목사들이 십일조를 내면 축복을 주신다고 사탕발림 하는것과 다르게 십일조는 이미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도저히 자기 힘으로 승리할 수 없는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대신해서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아브라함처럼, 어린 양의 피로 무조건 죽었어야 하는 장자들을 대신하는 레위인들에게 십일조를 주듯이, 또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정복하게 해 주신 것에 대한 의미로, 또 한 해의 소출을 우리에게 주셨기에 그에 대한 감사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승리를 기뻐하며 드리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나의 승리, 나의 생명, 나의 소유, 나의 수입….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그 모든 것을 다 드릴수 없으니 그 중 10분의 1을 떼어서 하나님의 것으로 구분하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즉 십일조는 나의 전부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앙 고백이자 기쁨의 표시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십일조나 헌금 내기를 싫어하는가?
제가 처음에 언급했던 십일조에 대한 설교를 기억하십니까? 십일조를 요구하는 목사는 지옥에 간다는 설교말입니다. 그 설교의 댓글을 확인해 보시면 가관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십일조 때문에 교회를 안다닌다고 자랑스럽게 쓰고, 십일조를 요구하는 목사들은 다 도둑이라는 등, 십일조를 안내겠다는 다짐들…
이 분들은 왜 십일조 내기를 싫어할까요? 더 웃기는 것은 교회도 안다니고 십일조를 낼 마음도 없는 사람들이 이를 통해서 교회를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이 분들이 십일조를 내기를 싫어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십일조를 통해 자신의 배를 채우고 자신의 공을 세우려는 목사들의 바로 정 반대에서 예수님의 종이 되기를 싫어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자기의 모든 돈이 자기의 것이여서 하나님께 그것을 드리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십일조를 요구하는 목사님과 같은 탐욕으로 내것을 빼앗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헌금을 십일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십일조를 하기 싫어 교회를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짜 성도,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에 이른 자들, 예수님의 피로 구속 받은 자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듭니다. 저 역시 하나님의 종입니다. 제가 그렇게 살지 못할 때도 많고 아니 거의 항상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게 살지만, 예수님께서 죽어야 할 저를 핏값으로 사셨으니 저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제가 얻는 모든 것은 제가 버는 모든 돈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종에게는 소유물이 없습니다. 다만 얼마를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저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나를 위해서나 나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곳에 재정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해야하나요? 말아야 하나요?
만약 지금까지 이 글을 읽고도 이 질문을 하신다면 이 글을 다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해야 된다라고 하는 쪽도 율법이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쪽도 율법입니다.
우리는 은혜로 사는 것이지 율법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중심을 다시 돌아보십시오.
혹시라도 십일조를 내면 하나님이 그 위에 물질적 축복을 부어주실거라는 기대로 십일조를 하신다면 당장 그만두십시오. 제가 아는 수 많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내어드리고 십일조 하는 분들은 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재정적으로 힘들게 어렵게 살고 계십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십일조 한다고 재정적 축복을 주실거였다면 그 분들이 가장 부자가 되었어야 합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재정을 부어주시고 돈을 버는 달란트나 기회를 주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 때문이지 십일조 때문은 아닙니다.
십일조와 관계없이 우리는 나의 모든 것 특히 나의 생명과 나의 소유가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무리 십일조를 하더라도 그 10분의 1을 냈으니 나머지는 다 내것이며 내 마음대로 살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십일조가 아닙니다. 십일조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팩트를 인정함에서 출발합니다.
십일조 내면서 손이 떨리고 돈이 아깝고 기쁘지 않다면 하지 마십시오. 다만 그 분은 믿음을 돌이켜 보시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십일조를 기쁘게 낼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하며 그 기도에 합당한 삶을 사셔야 합니다.
십일조 내면서 왠지 자랑스럽고 나의 의무를 다 한것 같고 십일조를 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게 된다면 회개하십시오. 십일조의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헌금을 하면서 그것이 내 공로인양 내가 교회를 위해 큰일을 한 것인양 목에 힘주고 자랑하고 다니는 분들은 평생 하나님 섬기는 줄알고 살다간 바리새인과 같은 분들입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자기 홀로 이렇게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내가 다른 사람들 곧 착취하는 자들과 불의한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더욱이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내 모든 소유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이 사람이 의롭게 되어 자기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자기를 높이는 자는 다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8:11~14>
다시 말하지만 십일조는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이라는 고백을 어떠한 형식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 고백을 십일조로 할 수도 있고 다른 형태로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정말 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느냐, 내가 예수님의 핏값으로 구속을 받았음을 인정하느냐 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느냐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온갖 종류의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판단의 공의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넘어가는도다. 너희가 마땅히 이것들도 행하였어야 하거니와 다른 것도 행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하느니라. <누가복음 11:42>
저는 여러분이 십일조를 하냐 마냐를 갖고 고민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가장 먼저 십일조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을 드리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그 분이 우리에게 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그 분이 나에게 해주지 않으셨다면 내가 어떻게 되었어야 하는지를 먼저 이해하십시오.
그 후에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10분의 1을 요구하실 수도 있고, 10분의 2를 요구하실 수도 있고 전재산을 요구 하실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이는 그가 한 주인을 미워하고 다른 주인을 사랑하거나 혹은 한 주인을 떠받들고 다른 주인을 업신여길 것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맘몬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마태복음 6:24>
영원을 위해서 사십시오. 이 땅에서의 부와 편함과 행복은 우리 삶의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십시오. 말씀과 은혜 가운데 우리가 소위 얘기하는 ‘물질적 축복’이 아니라 ‘예수님과 하나되는 축복’을 사모하고 구하고 두드리고 받으십시오. 그것을 누릴 때 이 세상의 어떤 부자들보다도 평안 속에서 기쁨 가운데 살아가며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