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
하나님의 찬송시를 모은 시편은 ‘축복된’ 혹은 ‘복 있는’ 이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이는 선악과를 먹음으로 저주받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은혜로 복이 남아 있음을 말씀해주십니다.
로마서 8장은 지금 이 세상의 모든 창조물이 인간이 저지른 죄로 인한 저주속에 고통받고 있으며 심지어 성령의 첫 열매를 소유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도 고통 중에 신음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뿐 아니라 우리 자신 곧 성령의 첫 열매를 소유한 우리까지도 속으로 신음하며 양자 삼으심 즉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림은 <로마서 8:23>
모든 인간은 죄를 지어 영원한 지옥불에서 우리의 죄값을 치뤄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복을 남겨두셨으며 그 복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복 있는 사람은 경건치 않은 자들이나 죄인들이나 모욕하는 자들 즉 하나님이 없다고 하고 하나님을 마음껏 비웃는 사람이 아니며 그들과 함께하지 않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 즉 말씀을 기뻐하며 그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합니다.
반대로 얘기하면 하나님의 율법을 기뻐하지 않고 말씀을 묵상하지 않는자들은 경건치 않으며, 죄인들이며, 모욕하는 자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사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경건이나 죄짓는 것들 모든 악행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거나 그 분의 말씀에 반항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의 기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이 세상에 모든 일은 악입니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악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고 하나님이 말하시는 선과 악을 구분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선을 행하지 못하고 우리의 본성대로 죄를 지으며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죄를 갖고 태어난 죄인이며 사탄에게 너무나도 쉽게 속아 넘어가는 연약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경건치 않은 자들의 계획대로 걷고 죄인들의 길에 서고 모욕하는 자들의 자리에 앉을수 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무엇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지 무엇이 하나님이 금하시는 일인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기뻐하고 그것에 동의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편 기자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기뻐하고 율법을 묵상하는 자가 복을 받을것이다.’ 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거꾸로 ‘복 있는 사람은 주의 율법을 기뻐하고 율법을 묵상한다!’라고 선포 합니다.
하나님의 복은 인간의 행위로 얻을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은 다른 말로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형통한 사람
주의 율법을 기뻐하고 묵상하는 사람은 강가에 심은 나무여서 잎사귀가 시들지 않고 열매를 잘 맺으며 그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 형통합니다.
우리가 선악과를 먹고 축복이란 단어를 오해하듯 형통이란 단어 역시 오해합니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축복나 형통을 이 땅에서 주어진 나의 개인적인 행복이나 부자가 되고 돈을 많이 버는 것으로 규정해 버립니다.
이는 성경에서도 형통이란 단어를 내가 원하는 바의 이루어짐이나 부를 쌓는 것으로 자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 복음의 풍성함을 설명하기 위한 비유이며 도구로 사용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시편 1편의 후반부에서 시편 기자는 형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설명해 줍니다.
형통하지 않은 자들 즉 경건치 않고 죄 짓는 자들은 심판 때에 서지 못하고 의로운 자들의 회중에 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심판에 서지 못하는자들, 의로운 자들의 회중에 들지 못하는 자들은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모든 민족들을 자기 앞에 모으고 목자가 염소들로부터 자기 양들을 갈라내듯 그들을 일일이 분리하여… 그때에 그가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존하는 불에 들어가라. <마태복음 25:34 & 41>
오히려 형통한 자들 즉 제 철에 열매를 맺는 나무 같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령께서 주시는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대적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애착들과 정욕들과 함께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라디아서 5:22~23>
의로운 사람들의 길을 아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의로운 사람들의 길을 아신다는 의미는 우리를 눈동자 처럼 지켜보고 계시며, 의인들이 가는 길을 승인하시고 또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경건치 않은 자들의 길은 낭떠러지 같은 길임에도 그들은 알아챌수 없으며 아무도 그들을 제대로 된 길로 인도하지 않기에 망하게 됩니다.
이 것은 시편이 이야기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첫번째 여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은 인간의 자의로 만들어 낸 가짜 선악, 가짜 도덕을 구분하는 유일한 방법이며 그것을 기뻐하는 것은 성령께서 주시지 않으면 죄인 스스로 가질수 없는 마음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말씀이라고 선포합니다. 그 말씀을 기뻐하고 묵상하는 것은 성령을 받은 자들 즉 구원받은 자들이 당연히 갖게 되는 마음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말씀을 읽으면서 불편함을 느끼고 찔림을 느끼고 크게 고통 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양날 검으로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쪼개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이며 나와 나의 죄를 분리시켜 가시는 하나님의 사랑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불편함과 고통 속에서도 우리는 나와 나의 죄를 분리시켜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하며 그 고난의 길을 지날때 많은 열매 맺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화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