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eter Paul Ruben의 작품 – Christ giving the keys of Heaven
드러내 놓고 그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그분을 붙잡고 그분을 꾸짖기 시작하거늘 그분께서 돌이키사 자기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너는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에게서 난 일들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에게서 난 일들을 좋아하는도다, 하시니라. <마가복음 8:31~32>
천주교는 카톨릭의 1대 교황을 베드로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천주교의 정통성을 말할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셨다는 열쇠를 빼놓지 않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하늘의 왕국의 열쇠들을 네게 주리니 무엇이든지 네가 땅에서 묶으면 그것이 하늘에서 묶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네가 땅에서 풀면 그것이 하늘에서 풀리리라, 하시고 <마태복음 16:18~19>
물론 예수님은 많은 그림이나 조각상들 처럼 열쇠를 직접 주셨거나 베드로가 열쇠를 받은 적은 없습니다. 이는 상징적인 의미일 뿐입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곧바로 하신 다음 말씀은 간과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분께서 돌이키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너는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내게 실족거리니라. 네가 하나님에게서 난 일들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에게서 난 일들을 좋아하는도다, 하시니라. <마태복음 16:23>
예수님은 왜 베드로에게 이런 엄청난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할까요?
베드로가 칭찬을 들은 이유
예수님은 많은 기적 특히 칠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킨 후 유대 지도자들에게 하늘에서 오는 표적을 보여달라는 요구를 받고 이를 거절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을 의미하는 요나의 표적만을 보여주겠다고 말씀하시지요. 그 후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 즉 그들의 믿음을 주의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곧바로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이에 예수님이 원하셨던 가장 정확한 답을 내놓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매 <마태복음 16:16>
이 대답에 만족하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 고백을 기초로한 교회를 세우시겠다며 진정으로 이 고백을 통한 믿음을 지옥 문도 이길 수 없다며 하늘의 왕국의 열쇠들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답은 분명 정확한 답이었으며 우리는 그것을 믿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생각한 그리스도, 유대인들이 바라던 그리스도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생각한 그리스도와 예수님께서 의미하셨던 그리스도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가 쓰고 싶은 글의 핵심 주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이스라엘은 로마의 압제에 괴로워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황제가 세금을 잘 거두려는 목적으로 인구조사를 하기 위해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햄으로 가면서 태어나셨습니다. (물론 이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성경의 관련 된 예언을 모두 성취할 수 있었지만 말이죠.)
이 압제는 사실 로마 뿐 아니라 유다가 망한 이후부터 계속해서 다른 나라에 속국으로 살면서 있어왔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경이 말하는 바를 살짝 왜곡해서 소위 ‘유대인의 민족적 메시아’를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즉 성경에서 분명하게 예언해 온 메시아 즉 그리스도가 올 것인데 그 메시아는 다윗 왕처럼 로마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이스라엘을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성경과 관계 없는 잘못된 메시아 관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포함한 모든 제자들 역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오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경배한 이유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전에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왕이 되시면 꼭 우리 두 아들을 제일 높은 자리에 앉혀 달라고 부탁하고, 다른 제자들은 그것 때문에 서로 싸웠던 것입니다.
그때에 세베대의 아이들의 어머니가 자기 아들들과 함께 그분께 나아와 그분께 경배하며 그분에게서 무엇인가를 바라매 그분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니 그녀가 그분께 이르되, 주의 왕국에서 나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주의 오른편에 다른 하나는 왼편에 앉는 것을 허락하옵소서, 하거늘… 그 열 명이 그것을 듣고 두 형제에게 분개하거늘 <마태복음 20:20~24>
심지어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도 제자들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수님께 물어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함께 왔을 때에 그분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주께서 이때에 그 왕국을 이스라엘에게 다시 회복시켜 주고자 하시나이까? 하매 <사도행전 1:6>
하지만 성경이 말씀하는 그리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메시아는 고작 그것 때문에 이 땅에 오신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루셔야 했던 일들
베드로가 예수님을 이스라엘을 가장 강한 나라로 만들어 주실 ‘그리스도’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 생각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베드로와는 완전히 다른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의 사역을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이는 바로 십자가와 부활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예수님께서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으로 가서 장로들과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일들로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며 셋째 날 다시 일으켜질 것을 자기 제자들에게 보이기 시작하시니 <마태복음 16:21>
십자가와 부활이 없이는 세상의 죄를 대속하실 수 없는 예수님의 의도와 마음은 아랑곳 하지 않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꾸짖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에서도 수제자로써 예수님이 왕국을 회복하면 가장 높은 직책을 맡고 권력을 누릴 것이라고 상상했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죽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꿈과 희망을 짖밟는 예수님의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에 예수님을 꾸짖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에게 헛소리 하지 말고 정신 차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너는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에게서 난 일들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에게서 난 일들을 좋아하는도다, 하시니라!”
하나님에게서 난 일들과 사람들에게서 난 일들
이제 저는 이 모든 사건을 우리에게 적용시켜 보기 원합니다. 왜냐하면 이 시대를 사는 기독교인들은 베드로와 비슷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경배하고 교회를 다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교회를 다니며 예수님을 믿습니까? 혹시 예수님의 능력을 이용해 자녀의 병이 낫거나 취직을 하거나 좋은 배우자를 얻거나 부자가 되고 싶어서는 아닙니까?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 정작 내 삶은 나의 편안함, 나의 인정받음, 내가 높아짐, 내가 행복함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우리의 신앙 생활이 하나님에게서 난 일들과 전혀 상관없이 사람들에게서 난 일들 때문이라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퍼부으신 책망을 나의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사탄아 너는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에게서 난 일들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에게서 난 일들을 좋아하는도다, 하시니라!”
우리는 어떤 찬양 가사처럼 내 뜻과 내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 삶에 내가 세운 내 목표, 내 방법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의 뜻과 주님의 것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을 환영하던 예루살렘 주민들의 변심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예수님께 어떤 행동을 할까요?
베드로와 똑같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가장 강력한 나라로 만들 메시아를 기다리던 예루살렘의 주민들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을 열열히 환영합니다.
매우 큰 무리가 자기들의 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무에서 가지를 베어 길에 흩어 깔며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던 무리들이 외쳐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그분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도시가 소동하여 이르되, 이분이 누구시냐? 하거늘 그 무리가 이르되, 이분은 갈릴리 나사렛의 대언자 예수님이라, 하니라. <마태복음 21:8~11>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임하는 우리 조상 다윗의 왕국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마가복음 11:10>
마가복음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환영하는 것은 무엇때문입니까? 가장 강력했던 왕, 이스라엘의 영화로웠던 다윗의 왕국을 회복 시키리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괴롭히던 로마를 혼내주고 이스라엘을 최고의 나라로 만들어 주기를 바라며 환영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로마를 혼내주기는 커녕 아무런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박히고 심지어 그 십자가도 제대로 끌고 가지 못해서 시몬의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골고다에 올라 십자가를 지어야 했던 예수님에게 많은 무리들은 이렇게 조롱합니다.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짓는 자여, 네 자신이나 구원하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그가 남들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라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 것이라. 그러면 우리가 그를 믿겠노라…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같은 말로 그분을 욕하더라… 그 남은 자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는지 우리가 보자, 하더라. <마태복음 27장>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획은 이 사람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자기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는 그리스도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과 전혀 상관없는 메시아를 기다렸기 때문에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놀랍게도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보고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아본 사람은 성경을 엄청나게 공부한 바리새인들도 아니었고, 예수님과 3년간 동고동락했던 제자들도 아니었고, 그를 지키던 로마 군병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알아보는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 되는 일은 분명히 아닙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 했을때도 예수님은 이를 베드로 스스로 알 수 있었던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알려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겸손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쪽으로 봐도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하고 우리의 모든 뜻을 주님께 내어 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지 못한다면 우리는 다시 한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조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든 삶의 주인은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