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한해도 이제 저물고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옵니다. 많은 이들이 크리스마스엔 어떤 선물을 받을까? 어떤 로맨틱한 하루를 보낼까?를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자기가 받고 싶은 선물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는 산타 클로스의 날도 아니고, 선물을 받기 위한 날도 아닙니다. 크리스마스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한 아기에 대한 날이며 하나님의 진노와 구원 그리고 사랑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 아기가 태어나기 약 800년 전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라는 선지자를 통해 이 아기에 대한 예언을 주십니다. 그 예언을 통해 이 아기가 누구인지,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며 그 분을 따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오늘은 이사야 선지자의 대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한 아기에 대해 나눠보고 싶습니다.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권이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이, 조언자, 강하신 하나님, 영존하는 아버지, 평화의 통치자라 할 것이기 때문이라. 그의 정권과 화평의 번창함이 끝이 없으며 그가 다윗의 왕좌와 그의 왕국 위에 군림하여 그것을 정비하고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판단의 공의와 정의로 그것을 굳게 세우리라. 만군의 주의 열심이 이것을 이루리라. <이사야 9:6~7>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자녀들에게 예쁘고 좋은 의미를 가진 이름을 지어주려고 하지만 고대 이스라엘에서 이름이 갖는 의미는 지금보다 훨씬 더 컸습니다. 당시 이름은 단순히 누군가를 부르는 호칭이 아닌, 그 사람의 아이덴티티를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백성들의 이름을 직접 지어주시거나 있었던 이름을 바꿔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에게도 수많은 성호가 있어 우리에게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려주십니다.
우리가 많이 들어본 여호와 이레, 여호와 라파, 여호와 닛시 등 수 많은 하나님의 이름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주는 하나님의 성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사야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아기의 특징을 나타내는 4가지 이름을 알려주십니다.
한가지 먼저 설명 드릴것은 개역 성경은 “기묘자(Wonderful), 모사(Counselor), 전능하신 하나님(Mighty God), 영존하시는 아버지(Everlasting Father), 평강의 왕(Prince of Peace)” 이렇게 번역을 해서 아기의 이름이 5가지인 것처럼 나오지만 원문으로 보면
- 놀라우신 조언자(Wonderful Counselor)
- 강하신 하나님(Mighty God)
- 영존하시는 아버지(Everlasting Father)
- 평강의 왕(Prince of Peace)
이렇게 형용사와 명사의 구조로 4가지 이름을 설명하고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4개의 이름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아기가 어떤 분인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놀라우신 조언자 (Wonderful Counselor)
‘놀라우신 조언자’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떠오른 분이 있습니다. 바로 ‘골목 식당’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어찌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요식업자들에게 때로는 따뜻하게, 또 때로는 거침없이 조언을 해주시는 백종원씨 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장사가 잘 안되서 고민하는 요식업자들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각 사장님들의 상황과 특징에 맞춰 ‘솔루션’을 제공하여 비지니스가 잘 되도록 조언하고 도와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이런 프로그램이 가능한 이유는 요식업과 음식에 대한 엄청난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는 백종원씨 덕분인데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항상 느끼는 점은 ‘백종원씨가 정말 많은 노력을 하셨고 엄청난 지식을 갖고 있다!’라는 점입니다.
그 분을 통해 많은 식당이 크고 작은 변화를 거치고, 장사도 더 잘되고 더 맛있고 좋은 음식을 손님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요식업계에서 백종원씨는 ‘놀라우신 조언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기의 이름 역시 ‘놀라우신 조언자’입니다. 하지만 이 이름이 가진 의미는 단순히 요식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만 놀라운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백종원씨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 모든 부분에, 그리고 이 땅에서의 삶을 너머 천국에서의 삶에 대해서까지 놀라운 조언을 해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포도주가 필요한 혼인 잔치에 항아리에 물을 넣으라고 조언하시고, 밤새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베테랑 어부에게 깊은 물에 그물을 내리라고 조언하시고, 눈이 멀어 보지 못하는 장님에게 실로암 물에 눈을 씻으라고 조언하셨을때 그 조언을 따른 모든 이들은 순종의 결과에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그들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또 아무도 내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리라. <요한복음 10:27~28>
그분의 조언을 통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놀라운 조언의 목적은 좋은 음식을 만들게 하거나 돈을 잘버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고 멸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강하신 하나님 (Mighty God)
개역 개정 성경이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번역한 구절에서 ‘전능하신’으로 번역된 기보어(גִּבֹּ֔ור)는 사실 ‘전능하다’라는 의미보다는 강력한! 영웅적인! 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아기 즉 예수님은 강하고 영웅같은 마치 수퍼맨 같은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머리속에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정말로 영웅적이며 강력한 힘을 가진 하나님에 어울리는 분인가요?
어떤 분들은 로마군에 붙잡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처형당하신,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면서도 자기가 지는 십자가의 무게도 감당할 수 없어 구레네 시몬이 대신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고 올라가야 했던 연약한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예수님께서 강한! 영웅적인! 하나님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린 양으로 오신 초림 예수님과 다윗의 사자로 오실 재림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하지 못해서 생기는 오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기의 초림은 그 분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시고 오는 제물로써의 어린 양의 모습이지만, 믿기로 정해진 그 분의 모든 백성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을 때 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그 날에는 강력한 심판자로 이 땅에 오시게 됩니다.
마태복음은 그 분이 큰 권능으로 이 땅에 오실 것이며, 요한 계시록은 모든 나라를 쳐부술 날카로운 칼과 왕의 홀을 가지고 온 세상을 지배하실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때에 인자가 올 징조가 하늘에 있을 것이다. 그 때에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울며,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으로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마태복음 24:30>
그분의 눈은 불꽃같이 빛나며, 머리에는 많은 왕관을 쓰고 계셨습니다. 몸에는 그분의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그분 외에는 그 이름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분은 피 묻은 옷을 입고 계셨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분은 입에 모든 나라를 쳐부술 날카로운 칼을 물고 계셨으며, 왕의 홀을 갖고 온 세상을 지배하시게 될 것입니다. 또한 두 발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틀을 밟으실 것입니다. 그분의 옷과 다리에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라는 칭호가 쓰여 있었습니다. <요한 계시록 19:12~16>
그 분은 이 땅에 있는 모든 권력과 권세를 없애고 그들을 자신의 발 아래 두어 지배할 것이며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 인류 역사를 지배하던 죄의 삯인 사망까지 멸망시키실 강력하고 영웅적인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리고 나서 그리스도께서 모든 권력과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고, 나라를 하나님 아버지께 돌려드릴 마지막 때가 올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원수를 자기의 발 아래 두실 때까지 당연히 왕노릇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 멸망받을 마지막 원수는 죽음입니다. <고린도후서 15:24~26>
영존하시는 아버지 (Everlasting Father)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강하고 영웅적인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사실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아무리 강력하고 아무리 영웅적인 하나님이더라도 그가 사라지거나 그 능력이 사라진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5년마다 대통령 선거를 하는데 선거가 끝낟고 정권이 바뀌면 기존에 일하던 사람들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것을 봅니다. 역사적으로도 로마처럼 수많은 강력했던 나라가 결국은 망해서 사라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유한하셨다면 그 능력이 영원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불안에 떨어야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라진 후 언제 다시 사탄과 사망이 우리를 괴롭힐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그 아기에 이름이 ‘영존하는 아버지’라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 분은 영원하시며 사라지지 않습니다.
내가 그분을 볼 때에 죽은 자같이 그분의 발 앞에 쓰러지니 그분께서 오른손을 내 위에 얹으시며 내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나는 살아 있는 자라. 전에 죽었으나, 보라, 내가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노라. 아멘. 또한 내가 지옥과 사망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노라. <요한계시록 1:17~18>
그렇다면 아버지라는 존재에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수많은 특징이 있지만 3가지를 묵상해 보고 싶습니다.
1. 창조주 예수님
예수님은 우리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을 만드신 분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지음을 받았습니다. 지음을 받은 것 중에서 어느 것 하나도 그분 없이 지어진 것이 없습니다. 그분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 생명은 세상 사람들을 비추는 빛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3~4>
예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2. 훈계하시는 예수님
제가 아들을 정말 많이 사랑하지만 아들이 말썽을 피우거나 잘못된 행동을 하면 따끔하게 혼냅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의 아버지이고 아들이 올바로 크도록 인도할 의무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격려하듯이 말씀해 주신 것을 잊었습니까? “내 아들아, 주의 훈계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주님께서 너를 꾸짖으실 때, 낙심하지 마라.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벌을 주시고, 그의 아들로 받아들인 자들을 채찍질하신다.” 따라서 여러분이 받는 고난을 아버지의 훈계로 알고 견디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가 자기 아들에게 벌 주듯이 여러분을 대하시는 것입니다. 아들을 훈계하지 않는 아버지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히브리서 12:5~7>
예수님도 저희가 잘못된 길로 갈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할때에 우리를 여러가지 모양으로 훈계하십니다. 고난을 주시기도 하고 말씀으로 잘못되었음을 가르쳐 주시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훈계하시는 분이십니다.
3. 보호하시는 예수님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우리를 끝까지 보호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 사람이라고 너희에게 말하였으니, 너희가 찾는 사람이 바로 나라면 이 사람들은 가게 하여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이전에 “아버지께서 제게 주신 자 중에 한 사람도 잃지 않았습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이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8:8~9>
십자가를 지시기 전 예수님은 연약하기 짝이 없었던 제자들을 보호하시고 홀로 잡혀가십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예수님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홀로 모든 죄의 처벌을 받으십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사랑으로 우리를 사망으로부터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시며 영원히 보호하시는 영존하는 아버지이십니다.
평강의 왕 (Prince of Peace)
너무나도 감사하게 아기의 네번째 이름은 평강의 왕(Prince of Peace)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놀라운 조언을 해주고 강력한 능력을 갖고 있으며, 영존하는 분이신데 그 분이 폭력의 왕이거나 우리를 괴롭히는 분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차라리 이 분이 강력하지 않고 영존하지 않는 것이 더 나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강력하고 영존하며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는 평강의 왕이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남기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세상이 주는 것과 달리 내가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 14:27>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신다고 선포하십니다. 이 평안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입니다. 얼만큼 중요하냐면 신약의 반을 쓴 사도 바울은 항상 이런 인사로 그의 서신을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성도로 부름을 받게 된 로마에 있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혜와 평강을 내리시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1:7>
은혜와 평강, 그것은 죄로 가득하여 어지러운 이 세상에서 그분의 백성들이 그 분을 바라며 살기위해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 평강은 우리에게 돈이 많이 생겼거나, 건강하거나 등의 조건이 충족되어서 생기는 평안이 아닙니다.
폭풍이 치는 바닷가에서도 사자굴에서도 커다란 물고기의 뱃속에서도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입니다.
걱정하지 말고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하고 아뢰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그러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어느 누구도 측량할 수 없는 평안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 가운데 풍성히 임할 것입니다. <빌립보서 4:6~7>
아기에 주어진 나라
그 아기는 어깨에 정사를 메었습니다. 그 아기는 모든 나라를 공의로 다스릴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에브라임의 모든 백성과 사마리아의 주민들까지도 주께서 그들을 심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교만하고 잘난 체하는 그들은 말하기를, “벽돌이 무너지면 다듬은 돌로 다시 쌓고, 무화과나무가 찍히면 그 자리에 백향목을 심겠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 백성은 그들을 치신 분에게 돌아오지 않고, 만군의 여호와를 찾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머리와 꼬리를 자르시고, 종려 가지와 갈대를 한 날에 찍어 버리실 것이다. <이사야 9:9~14>
사람들은 아버지처럼 훈계하는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교만하게 ‘벽돌이 무너지면 돌로 다시 쌓고, 무화가나무가 찍혀도 백향목을 심으면 된다.’라고 버티고 하나님을 대적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섬기지 않고 죄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을 훈계하기 위해 고난을 주시고 심판을 하시는데 사람들은 그 고난을 이겨낼 수 있다며 오만하게 버티고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분명히 권능과 권세로 이 땅을 다스리고 죄가 있는 모든 것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말씀은 계속해서 이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시편 2:12>
입맞추라는 것은 단순히 뽀뽀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왕으로 인정하고 순종하라는 의미입니다. 아들을 조언자로 하나님으로 아버지로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입맞추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멸망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모든 것을 해주시며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영존하는 영웅적인 예수님께 피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끝까지 구하실 것입니다. 한 아기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