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의 기자는 마태복음 1~3장을 통해 예수님에 대한 3가지를 소개하려 합니다.
첫 번째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유대인의 왕 예수님
두 번째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임마누엘의 예수님
세 번째는 모세라는 예표의 성취이신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3장과 4장은 모세가 말한 ‘나와 같은 선지자’가 예수님임을 보여주기 위해 쓰여집니다.
주 네 하나님께서 네 한가운데서 곧 네 형제들 중에서 나와 같은 대언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니라… 내가 그들의 형제들 가운데서 너와 같은 대언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들을 그의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할 모든 것을 그가 그들에게 말하리라. <신명기 18:15~18>
이사야와 말라기가 예언한 침례자 요한
마태복음 3장은 침례자 요한과 함께 시작합니다. 마태복음의 기자는 이사야가 예언한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바로 침례자 요한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굳이 요한의 모습을 설명해 줍니다.
바로 그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으며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 꿀이더라. <마태복음 3:4>
왜 이런 모습이 중요했을 까요?
이런 그의 모습은 침례자 요한이 말라기 선지자가 약속한 엘리야임을 나타내 주기 때문입니다.
낙타털 옷과 같은 거친 털을 가진 동물의 가죽은 대언자가 입고 다니는 것이고 (스가랴 13:4), 허리에 가죽 띠를 맨 모습은 엘리야의 상징과 같은 모습입니다.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이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하매 그가 이르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하니라. <열왕기하 1:8>
즉 침례자 요한은 이사야와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이고,
보라,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대언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말라기 4:5>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기를,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을 위해 큰길을 곧게 만들라. 모든 골짜기가 돋우어지며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구부러진 곳이 곧게 되며 험한 곳이 평탄하게 될 것이요, 주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함께 그것을 보리라. 주의 입이 그것을 말씀하셨느니라. <이사야 40:3~5>
이는 예수님께서 선지자들이 말한 메시아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그들이 그를 알지 못하고 자기들이 하고자 하는 것을 다 그에게 행하였도다. 사람의 아들도 그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당하리라, 하시매 그제야 제자들이 그분께서 자기들에게 침례자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마태복음 17:12~13>
침례의 의미
침례자 요한 역시 자신의 역할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주인공으로써가 아니라 뒤에 오실 분의 예비자로써 자신보다 더 커다란 분이 오심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나는 회개에 이르도록 너희에게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능력이 더 있으시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나를 자격도 없노라.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님으로 침례를 주시고 불로 침례를 주시리니 <마태복음 3:11>
이는 구약에서 엘리야가 자신보다 갑절의 능력을 받은 엘리사의 예비자로써 예표되고 있는것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회개의 침례를 주던 침례자 요한에게 예수님이 나오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이 침례를 도리어 받아야 한다는 요한을 설득해서 침례를 직접 받으십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그에게 이르시되, 지금은 이렇게 되도록 허락하라. 이렇게 하여 모든 의를 성취하는 것이 우리에게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그가 그분을 허락하더라. <마태복음 3:15>
예수님은 침례를 받으심으로 어떤 의들을 성취하셨어야 했을까요?
성부 하나님은 왜 예수님의 침례를 기뻐하시며 성령님을 보내주셨을까요?
침례는 예수님이 이루셔야하는 사역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침례를 의미하는 영어 Baptism은 의미의 밥티조(βαπτίζω)에서 파생되었는데 밥티조는 들어갔다 나온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침례를 할 때 물에 완전히 들어갔다 나오게 됩니다.
즉 침례는 자신의 죄를 회개한 사람이 죽어서 물에 들어가 장사된 바 되고 다시 물 밖으로 나와 살아나는 즉 부활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십자가 복음을 정말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리고 침례는 연합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분과 함께 묻혔나니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힘입어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진 것 같이 우리도 생명의 새로움 속에서 걷게 하려 함이라. <로마서 6:4>
즉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셔야 했던 이유는 그 분이 우리와 연합하여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질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우리가 교회에서 침례(세례)를 받는다고 구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결혼을 알리기 위해서 결혼식을 하는 것 같습니다. 결혼식을 한다고 결혼을 한 것은 아닙니다. 결혼식을 하고도 혼인 신고도 하지 않고 같이 살지도 않는다면 우리는 두 사람을 부부로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침례는 우리가 실제로 성령님에 의해 침례를 받았음을 즉 예수님과 연합하여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아났음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는 예식입니다.
출애굽과 침례
그런데 이 침례는 또 다른 무언가를 떠올리게 했는데 그것은 바로 모세의 출애굽입니다.
모세의 출애굽을 머리속에 그려보면 모세를 필두로 사람들이 홍해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바다는 보통 ‘죽음, 저주’를 상징합니다. 마치 사탄이 우리에게 행했듯이 자신을 오랜 시간 노예로 부리던 이집트 군인들에게 쫓기어 가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은 죽음과 저주를 상징하는 바다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그들은 죽지 않고 그 죽음과 저주를 뚫고 다시 뭍으로 올라옵니다. 그들은 꼼짝없이 죽었어야 했는데 이집트 군인에게 잡혀 죽던 바다에 빠져 죽던 죽었어야 했는데, 모세 덕분에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의 기자는 특별하게 침례를 받는 예수님의 모습을 ‘물속에서 올라오신다’고 표현하고 사도 바울은 홍해 바다를 건넌 것을 모세에게로 침례를 받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형제들아, 나는 이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곧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모두 바다를 지나가며 모두가 구름과 바다 속에서 모세에게로 침례를 받고 <고린도전서 10:1~2>
3장에서는 침례자 요한이 어떻게 대언자들의 예언 특히 이사야와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였는지와 예수님이 모세가 말한 ‘나와 같은 대언자’라는 것을 유대인들에게 설명하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4장에서는 예수님에게 더 강력한 모세의 역할이 부여됨을 또 예수님께서 어떻게 인류의 죄에 대해 회복을 해 나가는 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