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을 읽을 때 우리는 이 책이 유대인을 위해 쓰여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모든 성경이 마찬가지이지만 마태복음은 그 중에서도 가장 유대인의 입장에서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약 성경을 계속해서 마태복음과 연결시켜야 하며 구약에 대한 이해를 더 키워야 합니다.
마태복음의 가장 커다란 주제는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갑작스럽게 예수님이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유대인의 왕, 다윗의 자손
유대인들은 지금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아는 성경의 예표대로 분명히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의 자손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그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하신 것인데 그분께서 여럿을 가리키며, 씨들에게, 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를 가리키며, 네 씨에게, 하시나니 이 씨는 그리스도시니라. <갈라디아서 3:16>
특히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이 최고로 영화로운 시대였던 다윗왕의 시대를 그리워하며 다윗과 같은 사자같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는 복음서에 계속해서 나오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실 때마다 또 자신들을 구원해주기를 바랄때마다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거기서 떠나가실 때에 눈먼 두 사람이 그분을 따르며 소리를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하더라. <마태복음 9:27>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던 무리들이 외쳐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마태복음 21:9>
마태복음은 진짜로 예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유대인에게 메시아가 갖춰야하는 첫번째 조건에 충족됨을 확인해 줍니다.
특히 마태복음의 족보는 축약시켜서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 다윗에서 바벨론에게 망할때까지 바벨론에서 망하고 예수님께서 오실때까지 일부로 14대, 14대, 14대로 잘라서 기록합니다.
왜냐하면 14는 유대인들에게 다윗을 상징하는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에는 게마트리아라고 해서 알파벳에 고유 숫자를 갖고 있는데, 다윗의 이름의 게마트리아 숫자를 더하면 14가 됩니다.

14라는 숫자는 유대인들에게 유대인의 왕 메시아를 곧바로 떠올리게 했을것이며 마태복음의 기자는 이를 통해 예수님이 다윗과 같은 메시아임을 유추하도록 유도하려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이 직접 족보를 세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족보는 14대 14대 14대가 아닙니다. ^^;;;;
다윗에서 여고니야까지의 족보에는 15명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은 이를 성경의 오류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증거로 제시합니다. 하지만 이는 성경의 의미와 목적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오해입니다. 성경은 정확한 팩트를 기록하는 것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설명하는 목적으로 쓰여졌습니다.
특히 마태복음은 유대인의 왕 예수 그리스도라는 주제로 쓰여진 책입니다.
당시 유대인에게 메시아는 로마를 무찌르고 이스라엘을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로 만들어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던것이죠. 그리고 그런 오해를 하게하는 가장 큰 인물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성경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예수님을 예표하는 인물인 다윗입니다. 그들은 다윗이 왕이었을때의 영광을 잊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 이스라엘이 가장 높아지기만을 기다리는 것이죠.
심지어 예수님 제자들도 예수님의 부활 이후 즉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확신을 가진 후 예수님께 이제 이스라엘을 가장 강한 나라로 만드실 거냐고 묻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함께 왔을 때에 그분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주께서 이때에 그 왕국을 이스라엘에게 다시 회복시켜 주고자 하시나이까? 하매 <사도행전 1:6>

KING DAVID, Richard Gere, Alice Krige, 1985. ©Paramount
그래서 마태복음의 기자는 의도적으로 다윗을 무시하고 투명인간 취급해 버립니다. 즉 15명의 이름이 족보에 들어가 있지만 다윗은 그 중 하나로 취급하지 않는 것이죠.
즉 유대인들에게 “자! 여기 너희가 그렇게 고대하는 다윗에 관한 족보다!” 라고 얘기를 해 놓고, 다윗에서 여고니야까지의 족보에 다윗을 한 세대로 취급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 입니다. 이를 설명하는 구절이 밧세바를 다윗의 아내가 아닌 우리야의 아내로 소개하는 구절 입니다.
이새는 다윗 왕을 낳고 다윗 왕은 우리야의 아내였던 여자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마태복음 1:6>
이를 통해 마태복음의 기자는 자신이 타겟으로 삼은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기다리는 다윗은 완전하지 않아!
너희는 다윗같은 메시아를 기다리면 안되! 난 너희가 기다리는 이스라엘을 로마에서 독립시키고 최고의 강대국으로 만들어 주는 다윗같은 메시아가 아니야!
그런데 너희에게 진짜 다윗, 진짜 왕, 진짜 그리스도가 계시는데 그 분이 너희를 위해 이땅에 오셨고, 너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으며, 너희를 위해 부활하신 창조주 예수님이야!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런 같은 이유로 유다가 멸망하고 바벨론에게 끌려가게 된 여고니야 시대를 족보의 구분점으로 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약 성경에 의하면 다윗의 왕국은 영원하고 망하면 안되었는데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의 족보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기대에 부응하는 다윗의 자손임을 확인시켜줌과 동시에 그들이 기대하는 (오해하는)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고 강력하게 만드는 다윗이 아님을 설명해 줍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낳은 임마누엘 –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이번에 마태복음을 묵상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두 번째 구절은 1장 23절 말씀입니다.
보라, 처녀가 아이를 배어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들이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번역하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라. <마태복음 1:23>
유대인의 입장에서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또 다른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셨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예수님께서 그냥 사람이 아니라 처녀를 통해 태어난 사람의 아들(인자)이자 임마누엘 즉 우리와 함께계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한 표적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보라, 처녀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7:14>
예수님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에 대한 완벽한 성취이며 삼위일체를 특히 성자 하나님에 대한 설명을 해줍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예수님을 증오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함으로 신성모독을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말씀 그대로 손목에 말씀(테필린)을 묶고 다니는 이스라엘 군인
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주시니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너는 그것들을 네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네가 네 집에 앉을 때에든지, 길을 걸을 때에든지, 누울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그것들을 말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들을 네 손에 매어 표적으로 삼고 네 눈 사이에 두어 이마의 표로 삼으며 또 네 집의 기둥과 네 문에 기록할지니라. <신명기 6:4~9>
유대인들은 신명기 6장의 말씀에 따라 여호와 하나님 한 분 외에 다른 신이 있을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신명기 말씀 그대로 말씀을 손에 매어 갖고 다닙니다.
이렇듯 말씀을 목숨처럼 생각하는 이들에게 사람이 하나님이라는 개념은 상상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도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이런 이유로 더욱더 그분을 죽이려 하니라. 이는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길 뿐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아버지라고 말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더라. <요한복음 5:18>
하지만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에게 주실 메시아가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라고 선포합니다. 또 9장에서도 우리에게 오실 메시아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선포합니다.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권이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이, 조언자, 강하신 하나님, 영존하는 아버지, 평화의 통치자라 할 것이기 때문이라. <이사야 9:6>
유대인들은 신명기 6장 4절 말씀 때문에 메시아가 하나님을 알려주는 다른 구절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으며, 여호와의 증인들 역시 비슷한 이유로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믿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 불완전한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태복음 1장은 독자들에게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그리고 처녀가 낳을 것이라는 예언의 성취를 확인해 줍니다.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라.
마태복음 1장을 묵상하며 새롭게 깨달은 구절은 1장 21절 말씀입니다.
그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라, 하니라. <마태복음 1:21>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여호수아(יהושע)에서 온 말로 ‘주님이 구원이시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예수라는 이름 자체는 우리를 구원하실 주님 즉 하나님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이 말씀을 암송하면서 강하게 다가왔던 단어는 ‘자기 백성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나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이는 두려운 말씀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왕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즉 그 분의 백성이 아니라면 나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도 3장에서 세례를 받으러 오는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대신 역정을 내며 회개하지 않으면 찍혀버릴 것이라는 경고를 합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중의 많은 자들이 자기에게 침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그가 보고 그들에게 이르되, 오 독사들의 세대야, 누가 너희에게 경고하여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게 하더냐? <마태복음 3:7>
마태복음 1장을 읽고
이번에 저희 목장은 1년간 신약을 하루에 한 장씩 조금 깊게 묵상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Bible Project의 성경에 대한 안내를 통해 구성과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며 한 장 한 장 묵상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마태복음의 개요를 공부하면서 마태복음이 얼마나 놀라운 구조로 구성되어 있는지 이게 중구난방으로 막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써 놓은 것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과 의도를 갖고 있음을 배우면서 성경이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말씀을 읽을 때 훨씬 더 재밋고 무엇을 중점적으로 읽어야 하는지를 조금 더 알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의 자손, 족보, 다윗, 임마누엘, 예수… 이런 단어가 갖고 있는 의미와 메세지들을 찾아가며 묵상해 갈 때 우리가 성경에 대해 더 깊이 알고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있을 때 우리에게 더 큰 은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 신약 1독을 통해서 더 많은 기쁨과 평안을 주실 하나님을 기대하고 찬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