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경 책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해주는 놀라운 책이지만, 저는 요한이 쓴 요한 복음과 ‘요한 1서’를 참 좋아합니다. 무언가 영적이고 신비한 비밀이 있으며, 흥미로운 글 솜씨로 말씀에 빠져들게 합니다.
‘요한 1서’를 그리고 모든 성경을 해석하는 키는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 가난함, 복, 행복 등의 단어를 이 땅에서의 의미로 해석하기 쉽지만, 우리가 우리의 관점을 하늘의 관점으로 옮겨서 읽지 않으면 말씀을 오해하기가 너무 쉽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라. < 요한 1서 2:25 >
그러므로 우리가 ‘요한 1서’를 읽을 때, 2장 25절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읽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 합니다. 요한 1서는 그리고 성경 66권 전체는 영원한 생명을 위한 것 입니다.
요한 1서 기록 목적 – 기쁨을 충만하게…
요한은 1장 초반에 이 글을 쓰는 목적을 얘기하며 4절에 이렇게 얘기 합니다.
우리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 요한 1서 1:4 >
어떻게 우리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는 것일까요? 요한은 태초부터 계셨던 생명의 말씀 즉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며 편지를 시작합니다. 그는 자신이 생명의 말씀과 직접 함께한 증인임을 나타내며 자신의 말을 신뢰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 생명의 말씀을 이 편지를 읽는 독자들에게 보여서 아버지와 예수님 그리고 성도들이 교제함으로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도록 하려 합니다. 죄로 인해 저주 받아 죽을 수 없었던 우리가 생명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의 기쁨은 충만할 것 입니다.
5절부터 요한은 어떻게 교제가 가능한지, 교제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설명 합니다.
빛 가운데 것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요한은 어두움이 전혀 없으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은 빛 가운데서 걷는 것이라고 얘기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궁금증이 생겨야 합니다. 빛 가운데 걷는 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죄를 짓지 않고 사는 것일까요? 거룩하게 행하는 것일까요? 그런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우리가 말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이며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면 우리가 그분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들며 또한 그분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 요한 1서 1:8~10 >
오히려 그 반대인 것 같습니다. 빛 가운데 있다는 것은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것 입니다. 빛이신 예수님 말씀이신 예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드러내고 우리의 죄를 내어 놓는 것 입니다. 요한은 우리가 죄가 없다고 얘기하는 것에 대해 두번이나 얘기하며 이것이 나를 속이며 하나님을 거짓말 쟁이로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 합니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목숨걸고 노력했던 바리새인들
우리는 예수님이 계시던 당시에 자신이 의로운 선민이며 자신의 행위로 천국에 가려고 했던 사람들을 압니다. 그 중 하나는 바리새인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리새인을 악한 사람이라고 오해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오늘날 본다면, 안티들도 인정하는 진정한 종교인입니다. 그들은 부지런히 일어나서 씻고 말씀 보고, 구제하고, 열심히 제사 드리고 율법을 지키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들이 만든 규칙을 목숨걸고 지킵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저 세리와 같은 죄인이 아닌 것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빛이신 예수님이 오자, 그들의 죄가 드러났고, 그들은 그 빛 안에서 걷는 대신 그 빛을 죽여 버리기로 선택 합니다. 아벨의 의로운 제사로 인해 무안해진 가인이 아벨을 죽였듯, 그들은 그렇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습니다.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이는 악을 행하는 자마다 자기 행위를 책망 받을까 염려하여 빛을 미워하고 또 빛으로 나아오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요한 복음 3:19~20>
하나님과 교제를 하기 위해서 우리는 나의 죄를 가리고 어두움으로 숨는 것이 아니라, 너무 부끄럽고 고통 스럽지만, 나의 죄를 오히려 드러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이 그 죄를 갖고 우리를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를 죄로부터 깨끗게 하실 것이기 때문 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정죄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 하심이라. <요한 복음 3:17>
우리의 죄를 변호사 앞에 내어 놓자!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깨끗게 하시고 용서하실 수 있는 근거는 우리에게 변호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변호사는 우리의 죄를 변론해 줄 뿐 아니라 직접 그 죄의 처벌을 직접 담당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 분과 교제하고 있다는 증거는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 입니다. 그 분을 알면서 그 계명을 지키지 못할수 없고, 그분의 계명을 지킨다면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계명은 무엇일까요? 요한은 이 계명이 처음부터 있었던 옛 계명이며 또 참된 새 계명이라고 소개합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모든 명령 중에서 첫째 명령은, 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주시니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니라. 이것이 첫째 명령이니라. 둘째 명령은 곧 이것과 같으니,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이니라. 이것들보다 더 큰 다른 명령은 없느니라, 하시매 <마가 복음 12:29~31>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증거는 우리가 사랑하는가 입니다. 요한이 하나님의 계명이 무엇인지 얘기하기 이전에 죄 사함에 대해 얘기한 이유는 우리가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이유가 나의 어떠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 입니다.
나의 죄가 용서 받음을 안다면 다른 사람들의 죄를 용서할 수 있다
요한은 자기가 빛 안에 있다고 말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아직 어두움 안에 있는 것 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며 어둠이 그 눈을 멀게 했다고 얘기합니다. 이는 내 형제를 사랑함이 또 하나님을 사랑함의 근원이 내가 얼만큼 커다란 죄인인지 깨닫고 그 용서의 사랑을 이해함에서 나오는 것임을 얘기합니다. 그래서 요한은 사랑을 얘기하면서 죄를 용서 받은 것을 기억나게 합니다.
어린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들이 그분의 이름으로 인해 용서되었기 때문이라. <요한 1서 2:12>
우리는 형제를 미워할 수 밖에 없는 존재 입니다. 우리에게는 악이 넘쳐납니다. 우리는 그 악을 이겨낼 힘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와 있을때, 그 말씀이 나와 함께 그 악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그 시작은 빛으로 나아가는 것 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죄 용서의 은혜와 사랑이 나를 변화 시킵니다. 형제들을 사랑하게 하며 점점 나의 죄를 이기게 합니다.
그리고 악을 정복했다면 이제는 더 이상 세상을 사랑하지 않게 됩니다. 나를 위한 삶을 멈추게 됩니다. 이는 창조의 회복입니다. 우리가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 처럼 되고 싶어 하나님의 소유였던 내 삶을 훔쳐간 것을 다시 되돌려 드리는 과정입니다. 더 이상 나의 체면, 나의 욕심, 나의 자랑에 이끌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님을 깨달으며 영원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의 죄를 들키고 싶지 않아, 자신이 망신 당하는 것을 두려워해서 빛으로 나아오지 않고, 그 빛이 메시아가 아니라고 얘기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면 누가 거짓말하는 자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가 곧 적그리스도니라. 누구든지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가 없되 아들을 인정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요한 1서 2:22~23>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이 그리스도 이심을 압니다. 어떻게요? 성령께서 알려 주셔서요.
이 세상에서의 기쁨이 아닌 영원한 기쁨
그리고 그 진리를 안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은 이 세상에서의 부귀 영화나 성공이나 행복이 아니라 영생이라는 것 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영생의 약속으로 인해 기쁨이 충만할 수 있는 것 입니다.
여러분이 브루마블이나 모노폴리를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거기서 돈을 다 잃고 파산하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게임을 하는 도중에 문자를 받았는데, 하던일이 잘되서 큰 돈을 벌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게임 중에 돈을 잃고 파산을 하는 것이 그를 슬프고 힘들게 하겠습니까? 게임 중에는 돈을 잃을수도 있고 딸수도 있지만, 그것이 이 사람의 기분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 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영생을 얻어 하나님과 교제한다는 사실은 이 땅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과 관련이 없이 기쁜 것 입니다. 물론 이 땅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영생의 소망으로 인해 기쁨이 충만할 수 있는 것 입니다.
세상의 수 많은 교회가, 수많은 거짓 선지자가, 수많은 적그리스도들이, 보이지 않는 영생으로 기뻐하는 우리를 이상하게 여길 것 입니다. 그리고 바보같이 살지 말고, 우리 처럼, 이 땅의 성공을 위해 달리라고 말할 것 입니다. 이 땅에서 최고의 쾌락으로 삶을 즐기라고 할 것 입니다. 하지만 요한은 이제 마지막 때니 그분 안에 거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온갖 죄가 까발려지고, 부끄러움을 당할 것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