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칩… 그리고 측두엽 간질 환자 사도 바울?
인터넷에서 무신론자들과 얘기를 할 때면 사도 바울이 측두엽 간질 환자였다는 조롱섞인 이야기를 듣습니다. 뜬금없이 왜 측두엽 간질 환자라고 얘기할까요?
그 조롱에는 과학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뇌 과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은 뇌의 어떤 부분이 우리의 행동과 관련이 있는지 발견해 나가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전두엽은 기억 및 사고의 행동을 관장한다던가 소뇌가 골격근의 활동 조정을 한다던가… 그런데 그 중 측두엽이 종교적인 활동이나 환상을 보는 것에 관련이 있다는 발견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무당이 신내림을 받았다고 얘기할 때나, 집중해서 기도를 할 때, 측두엽에 커다란 반응이 있다던지, 또 피실험자의 측두엽에 어떠한 자극을 가했을때,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던가, 귀신이 있다고 여긴다는 것 입니다.
무신론자들은 이에 대해 성급한 결론을 내립니다. 인간의 모든 종교적인 환상이나 믿음이 사실은 이 측두엽의 과도한 활동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죠.
즉 사도 바울이 다마스커스에서 예수를 본 현상을 단지 측두엽 간질 환자였던 사도 바울의 측두엽이 만들어 낸 환상에 불과하다고 격하시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결론이 논리적인 것일까요? 이 주장을 보기 위해서는 그들이 가정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해 봐야 합니다.
뇌 과학자들은 무엇을 발견했는가?
뇌 과학자들은 우리의 의식적 행동은 대뇌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우리의 감각 기관에 자극이 오면, 감각 신경을 통해서 대뇌로 전달되고 대뇌에서 운동 신경에 명령을 내리면 운동 기관이 반응해서 움직임이 나타난다는 것 입니다.
이 가정에 문제는 무엇일까요? 바로 인간의 자유 의지가 없다는 것 입니다. 우리의 모든 의식적 행동은 뇌의 전기적 반응이거나 프로그램에 불과한 것 입니다. 내가 오늘 일어나 스마트 폰을 볼지, 화장실에 갈지에 대한 결정은 나의 감각 기관에 오는 자극에 따른 뇌의 반응일 뿐인 것입니다. 즉 인간은 기계에 불과한 것 이죠.
하지만 그게 사실인가요? 만약 누군가가 뇌가 우리의 행동과 생각을 관장하고 이에 대한 최종 결정권이 있다고 믿는다면 그렇게 생각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내 팔을 10번 올렸다 내렸다 하기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 팔을 5번 올렸다 내렸다 한 후에 다시 무작위 적으로내가 원하는 행동을 할 수가 있습니다. 즉 나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는 증거이죠. 그렇다면 이 자유 의지의 주체는 무엇일까요? 내 안에 나의 뇌를 조종할 수 있는 무언가가 그것을 자아라고 부르던 의식이라고 부르던, 영혼이라고 부르던, 무언가가 더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즉 나의 영혼이 나를 컨트롤하며 그 컨트롤이 뇌의 활동을 통해 발현된다면 같은 현상을 설명할 수 있으며 그런 관점으로 보는게 훨씬 더 설득력 있는 생각 일 것입니다.
이에 대한 무신론자들의 반응은 “그렇다면 알츠하이머 병이나 헌팅턴 병을 가진 사람들은 무엇입니까? 왜 그들은 자신의 행동을 컨트롤 할 수 없는 것 입니까?” 라고 질문합니다.
영혼과 자유의지 그리고 육체
이를 차를 타고 있는 사람에 비유하면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 핸들이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자동차 바퀴는 항상 오른쪽으로 움직입니다. 뇌 과학자가 자동차 핸들이 차 바퀴가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최종 권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저는 그 핸들을 조종하는 운전자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 입니다.
그런데 자동차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브레이크를 밟아도 차가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차안에 운전자가 있다 하더라도 차가 운전자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을수 있습니다. 또 거꾸로 운전자에 문제가 생길수도 있습니다. 술을 마셨거나 팔을 다쳤거나 해서 정상적인 차를 제대로 조종하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그 두가지 경우 모두 하나의 문제가 둘을 다 다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영혼과 몸은 묶여 있는 것이죠.
즉 뇌과학자들은 영혼의 존재 혹은 의식의 존재를 배제해 놓기 때문에, 측두엽의 반응을 내적 자아의 변화에 따른 결과가 아닌 행동에 대한 원인으로 성급히 결정해 놓는 것 입니다. 자동차의 바퀴가 돌아가는 것을 자동차의 핸들이 돌아가기 때문이라고 성급히 결론 내리는 것과 같은 이치죠.
사도 바울은 측두엽에 있는 문제로 인해 환상을 본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이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과연 모든 기독교인들의 환상과 음성듣기와 예언은 단지 측두엽의 과도한 활동에 의한 착각일까요?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본 것은 측두엽 간질에 의한 발작 현상일 뿐인가요?
사도 행전은 바울과 함께 다니던 누가가 기록한 책 입니다. 14장과 19장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었는지 볼까요?
루스드라에 발이 허약한 어떤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그는 모태에서부터 불구가 되어 걸은 적이 없더라.그 사람이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그를 똑바로 쳐다보고 고침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음을 알고는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똑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고 걸으니라. <사도 행전 14:8~10>
하나님께서 바울의 손으로 특별한 기적들을 행하셨으므로 심지어 사람들이 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자들에게 대기만 해도 질병들이 그들에게서 떠나고 악한 영들도 그들에게서 나가더라. <사도 행전 19:11~12>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사도의 직분을 받아 다른 사도들 또 누가와 함께 선교 여행을 다닙니다. 그런데 누가는 사도 바울이 기적을 일으켜 걷지 못하는 사람을 걷게 했고 많은 질병을 고쳤으며 귀신들을 쫓아 냈다고 기록 합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단지 측두엽 간질로 발작을 일으켰다고 기적도 일으킬 수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누가 역시 측두엽 간질을 앓았던 것일까요?
누가는 베드로와 요한 등 많은 사도들이 기적을 일으켰다는 것을 기록하고 그것을 초기 기독교 대부흥의 원인 중 하나로 소개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 모든 기독교 인들이 측두엽 간질을 앓았던 것일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당시의 부흥을 일으켰던 것일까요? 아니면 지금 기독교가 가장 큰 종교라는 사실을 믿는 우리 모두가 측두엽 간질을 앓고 있는 것일까요?
전체의 그림을 보지 못하고 단편적인 지식만을 갖고 결론을 내렸을 때는 그에 의한 더 큰 진리를 보지 못하게 되지 못합니다. 즉 그런 과학적인 실험들을 통해서 종교인들의 환상과 체험은 뇌의 활동에 의한 착각이라는 결론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뇌 과학이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
그럼에도 우리는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에서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종교적인 믿음과 하나님 혹은 영적 체험이 측두엽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 된다는 것 입니다.
인간의 과학은 이제 뇌를 컨트롤 해서 인간의 행동을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쥐나 바퀴 벌레에게 전기 자극을 주어 방향을 컨트롤 함은 물론 1부터 10까지 숫자를 세는 사람의 뇌에 전기 자극을 주어 숫자를 세지 못하게 합니다. 그는 단순히 숫자를 세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숫자를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것 입니다.





인간은 인간의 뇌를 조종할 수 있다
이 기술이 인간에게는 적용되지 않으란 법이 있을까요? 이 기술을 통해 사람들이 특정한 믿음을이나 지식을 갖지 못하게 하거나 잊어 버리게 할 수 없을까요?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리고 세상은 지금 그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내가 운전하고 있는 자동차에 전선을 끊어서 브레이크가 듣지 못하게 한다면, 그리고 엑셀을 한번만 밟아도 엄청난 가속을 하게 한다면, 차와 나는 크게 부숴지고 살아남지 못할 것 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명확하게 경고해 놨습니다.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로운 자나 매인 자에게 그들의 오른손 안에나 이마 안에 표를 받게 하고 그 표나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숫자를 가진 자 외에는 아무도 사거나 팔지 못하게 하더라. 여기에 지혜가 있으니 지각이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볼지니라. 그것은 어떤 사람의 수요, 그의 수는 666이니라. <요한 계시록 13:16~18>
몇년전 커다란 논란을 일으켰던 ‘베리칩’을 기억하실 겁니다. ‘베리칩’의 특징은 우리의 몸에 삽입하여 다양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인데, IBM의 광고나 신문 기사들을 봐도 이는 분명 물건을 매매를 포함한 다양한 목적으로 우리의 몸에 심길 것 입니다.
‘베리칩’이 우리의 뇌에 할 수 있는것
물론 지금 나와 있는 ‘베리칩’이 그럴 것이란 얘기가 아닙니다. 이름이 무엇으로 바뀔지, 형태가 무엇을 바뀔지, 어떤 기능이 추가가 될지는 모릅니다. 이미 동일한 장치는 ‘베리칩’에서 ‘Positive ID’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그 형태가 쌀알같은 칩에서 문신같은 것이 될수도 있고, 더 작은 형태의 무언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의 이름이 ‘베리칩’이던 무엇이던, 무언가 우리의 몸에 삽입될 성경이 얘기한 짐승의 표는 얼마든지 사람들을 구원에서 멀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베리칩’ 같은 장치를 우리의 신경에 연결 시키고 믿음과 관련된 뇌의 부분들에 지속적인 자극을 주어 믿지 못하게 하거나 손상이 가게 하면 됩니다.
여러분이 짐승의 표를 받아 평생 동안 예수님이란 이름을 생각할 수 없다면, 아니 평생 뇌를 조종 당해 예수를 저주하며 살아가게 된다면, 그래도 여러분은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확신하실수 있으십니까?
많은 분들이 우리의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라며 ‘베리칩’에 대한 내용을 반박 합니다.
맞습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는 것 입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 믿음을 가질수 없도록 방해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에게 남은 평생약물을 투여하고 모든 기억을 상실케 해도 믿음을 가질수 있다고 확신하는 분이 있으신가요? 베리칩 같은 장치를 통한 뇌의 직접적인 전기 자극은 이보다 더 확실하게 믿음과 지식을 없애버리는 방법이 될 것 입니다.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킬 능력이 있는것과 그렇게 하시는 것은 다른 문제 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뛰어 넘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뇌가 전기 자극으로 방해를 받더라도 믿음을 주실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지 않으실 겁니다.
동방 박사들이 헤롯 왕을 찾아가 이스라엘에 왕이 나셨다는 소식을 전하고 다시 돌아오지 않자, 헤롯 왕은 2살 이하의 남자 아기들을 다 죽입니다. 그 때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의 아빠 요셉에게 이집트로 도망 가라고 합니다. 왜 예수님이 이집트로 도망을 갔어야 했을까요? 하나님이 헤롯을 죽일수 없었나요? 아니면 헤롯이 보낸 군사들이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그들의 눈을 가려주실수 없었나요?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성경 말씀을 성취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일어나 밤에 어린아이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떠나 헤롯이 죽을 때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것은 주에 관하여 대언자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려 함이더라. 이르시되, 이집트에서 내가 내 아들을 불러내었노라, 하셨더라. <마태 복음 2:14~15>
이에 대언자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 것이 성취되었으니 일렀으되, 라마에서 거기서 애통하고 슬피 울며 크게 애곡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이것은 라헬이 자기 아이들로 인하여 슬피 우는 것이라. 그들이 없으므로 그녀가 위로 받기를 원치 아니하였도다, 하였느니라. <마태복음 2:17~18>
하나님께서 ‘베리칩’에 대해 말씀해 주신 것
그렇다면 ‘베리칩’에 대해 하나님은 어떻게 성경에 말씀해 주셨습니까?
셋째 천사가 그들을 뒤따르며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그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고 자기 이마 안에나 손 안에 그의 표를 받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즙 곧 그분의 격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즙을 마시리라. 그가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통을 받으리니 그들의 고통의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는 자들과 그의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이나 낮이나 안식을 얻지 못하리라. <요한 계시록 14:9~11>
짐승의 표를 받은 자는 누구든지 상관 없이 지옥에 간다고 하신 것 입니다. 그럼에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며 하나님이 경고하신 짐승의 표를 덮석 받는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일을 없을 것 입니다.
여러분은 누군가가 여러분의 뇌를 자극해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게 한다면, 그를 뛰어 넘어, 뇌를 자극해 사탄을 숭배하고 섬기며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해서 저주하며 살게 했을 때에도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럴 확신을 갖고 계십니까?
분명히 미래에는 인간의 뇌에 기계적인 장치를 해야 생존할 수 있는 때가 옵니다.
‘베리칩’이 짐승의 표가 아니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의 의견은 지금 ‘베리칩’을 강제로 박으라고 하는 곳이 없지 않냐는 것 입니다. 네 지금 강제로 하는 곳은 없지만 세상은 지금 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으며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결국은 ‘베리칩’이 없으면 매매할 수 없고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거기에 그치는 것 아니라 컴퓨터를 아예 뇌에 박고 인간의 모든 지식이나 기억 능력을 컴퓨터에 의존해 사는 트랜스 휴머니즘의 세상이 도래할 것 입니다.
이미 많은 나라들이 현금 없는 사회를 향해 가고 있고, 관련 기술은 발전해 가고 있으며, 이는 너무나도 편하고 효율적인 사회 통제 시스템이자 우리의 삶을 더욱더 편하게 만들어 줄 기술임이 분명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삶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의 영광,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며 모든 저주가 완전히 심판받는 그 날을 사모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가 있나니 곧 여기에 하나님의 명령들과 예수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나서 내게 이르시되, 기록하라. 이제부터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께서 이르시되, 그러하다. 이것은 그들이 그들의 수고를 그치고 안식하게 하려 함이니 그들의 행위가 그들을 뒤따르리로다, 하시더라. <요한 계시록 14:12~13>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성경이 얘기하는 짐승의 표가 무엇인지 더 분명히 드러날 것 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 사실들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 입니다. 지금 중동에 크리스챤들이 보호 받지 못하고 죽는 것 처럼, 선진국에서도 예전 독일 처럼 크리스챤들이 차별받고 미움받고 죽게 될 것 입니다. 모든 사람이 몸에 무엇을 삽입해야 살수 있는 세상이 오고 그렇지 않은 자는 사회 내에서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해 도태될 것 입니다.
이런 ‘베리칩’에 대한 경고들은 사그러져가고 많은 사람들이 타협하고 성경 말씀을 무시하게 될 것 입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이 땅에서의 삶은 어차피 100년 안에 끝나지만 천국의 삶이나 지옥에서의 고통은 영원하다는 것 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말에 속지 마시고,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지 않으면 우리는 패배할 수 밖에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