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 Dive 다니엘 9:24~27

70 이레 예언 — 메시아는 언제 죽어야 했는가

구약의 계산과 천문학이 같은 해로 수렴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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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왜 이 예언인가

하나님의 존재를 논증하는 방법은 여럿입니다. 우주의 미세조정, 생명의 정보량, 도덕의 객관성, 의식의 환원 불가능성. 모두 유효하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추론이라는 것입니다.

예언은 다릅니다. 예언은 검증입니다.

미래가 열려 있다면 예언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시간 바깥에 있는 존재만이 아직 오지 않은 사건을 기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자기를 검증받는 방식으로 예언을 제시할 때, 그것은 신학적 주장이 아니라 반증 가능한 주장이 됩니다.

이 글에서는 다니엘 9장의 70 이레 예언 하나만 다룹니다. 이 예언은 특별합니다. 상징이나 시적 표현이 아니라 숫자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출발점이 있고, 기간이 있고, 도착점이 있습니다. 맞거나 틀리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도착점을 검증할 독립적인 자료가 존재합니다. 달의 위상은 신앙과 무관하게 계산됩니다.

1부
예언 본문

다니엘 9장 24~27절

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도시 위에 칠십 이레가 정해졌나니 이것은 그 범법을 그치게 하며 죄들을 끝내며 불법에 대하여 화해를 이루며 영원한 의를 가져오며 환상과 대언을 봉인하고 지극히 거룩하신 이에게 기름을 붓기 위함이니라.

25 그러므로 알고 깨달을지니라. 예루살렘을 복구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이 나아가는 때로부터 통치자 메시아에게 이르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될 것이요, 그 거리와 성벽이 다시 건축되되 곤란한 때에 되리라.

26 육십이 이레 뒤에 메시아가 끊어져 없어질 터이나 자기를 위한 것은 아니니라. 장차 임할 통치자의 백성이 그 도시와 성소를 파괴할 것이며 그것의 끝에는 홍수가 있겠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황폐하게 하는 일들이 정해졌느니라.

27 그가 한 이레 동안 많은 사람과 그 언약을 확정하겠고 그 이레의 한중간에 그가 희생물과 봉헌물을 그치게 할 것이며…

먼저 흔한 오해 하나를 정리합니다

이 예언을 "세상이 앞으로 490년 남았다"로 소개하는 글이 많습니다. 본문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24절은 "네 백성과 네 거룩한 도시 위에" 칠십 이레가 정해졌다고 합니다. 대상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예루살렘입니다. 세계사 전체의 남은 기간이 아닙니다.

이 구분은 사소하지 않습니다. 예언의 범위를 잘못 잡으면 해석 전체가 어긋납니다.

다니엘서 70 이레 도표
다니엘 9:24~27의 구조 — 7 이레 · 62 이레 · 1 이레
2부
이레의 단위

"이레"는 무엇인가

히브리어가 말하는 것

"이레"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샤부아(שָׁבוּעַ)입니다. 어근은 "일곱"(שֶׁבַע, 셰바)이고, 뜻은 "7의 단위"입니다. 7일 묶음일 수도 있고 7년 묶음일 수도 있습니다. 단어 자체는 단위를 지정하지 않습니다.

회의론자가 여기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정당합니다. "왜 하필 년으로 읽는가? 날로 읽으면 490일밖에 안 되는데, 년으로 읽어야 예수님까지 닿으니 그렇게 읽는 것 아닌가?"

답은 본문 안에 있습니다.

다니엘 자신이 구별해서 씁니다

다니엘 10장 2~3절에서 다니엘은 "세 이레 동안" 애곡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만 히브리어 원문이 다릅니다.

שְׁלֹשָׁה שָׁבֻעִים יָמִים

(셸로샤 샤부임 야밈) — "세 이레, 날들"

"날"(יָמִים, 야밈)이 명시적으로 붙어 있습니다. 영어 KJV는 이를 "three full weeks", 직역하면 "weeks of days"로 옮깁니다. 9장에서는 이 단어가 붙지 않습니다.

다니엘은 날 단위를 뜻할 때 굳이 표시했습니다. 표시하지 않은 9장의 이레는 날이 아닙니다. 이건 해석자의 편의가 아니라 저자 자신의 용법입니다.

문맥도 년을 가리킵니다

곧 그가 통치하던 첫해에 나 다니엘은 주께서 대언자 예레미야에게 주신 말씀 곧 그분께서 예루살렘의 황폐함을 마치기 위해 정하신 칠십 년을 책들을 통해 깨달았느니라.

— 다니엘 9:2

다니엘은 70년을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그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70 이레가 주어집니다. 70년을 생각하던 사람에게 주어진 70×7이 갑자기 날 단위가 될 이유가 없습니다.

안식년 제도

이스라엘에는 7년마다 땅을 쉬게 하는 안식년이 있었습니다(레위기 25장). 역대하 36:21은 바빌론 포로 70년을 지키지 않은 안식년들에 대한 보상으로 설명합니다. 7년 주기가 이스라엘의 시간 단위였다는 뜻입니다.

결론: 69 이레 = 483년
3부
출발점

네 개의 칙령

다니엘은 계산의 시작을 "예루살렘을 복구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이 나아가는 때"로 지정했습니다(9:25). 성경에는 이와 관련된 페르시아 칙령이 넷 있습니다.

#칙령연대대상출처
1고레스BC 538성전에스라 1:1~4
2다리오 1세BC 520성전 (고레스 칙령 재확인)에스라 6:1~12
3아닥사스다 1세 7년BC 458성전 예배·율법 시행에스라 7:11~26
4아닥사스다 1세 20년BC 445/444도시와 성벽느헤미야 2:1~8

앞의 셋은 모두 성전에 관한 것입니다. 예배 처소의 재건과 정비입니다. 다니엘이 말한 것은 성전이 아닙니다.

그 거리와 성벽이 다시 건축되되 곤란한 때에 되리라

— 다니엘 9:25

"거리"(רְחוֹב, 레호브 — 광장·시가)와 "성벽"(חָרוּץ, 하루츠 — 해자 또는 성벽). 이것은 도시입니다. 조건에 맞는 칙령은 네 번째 하나뿐입니다.

느헤미야의 칙령

아닥사스다 왕 이십년 니산월에 왕 앞에 포도주가 있기에 내가 포도주를 들어 왕에게 드렸는데…

— 느헤미야 2:1

느헤미야는 왕에게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청원하고 허락을 받습니다(2:5~8). 왕은 목재 조달을 위한 공문까지 발급합니다. 이것이 도시 재건 명령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의 "곤란한 때에"라는 표현이 그대로 실현됩니다. 느헤미야 4장과 6장은 산발랏과 도비야의 방해 공작, 무장한 채 진행된 공사를 기록합니다.

"곤란한 때"의 고고학적 흔적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느헤미야를 방해한 산발랏은 성경 바깥의 사료에도 등장합니다. 이집트 엘레판티네 섬에서 발견된 BC 5세기 아람어 문서군에, 유대인 공동체가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에 보낸 서신이 포함되어 있고 거기에 "사마리아 총독 산발랏의 아들들"이 언급됩니다.

느헤미야가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면, 그가 이름을 댄 정적이 동시대 페르시아 행정 문서에 총독으로 등장할 이유가 없습니다.

연대: BC 445년인가 444년인가

아닥사스다 1세는 아버지 크세르크세스 1세가 살해된 BC 465년에 즉위했습니다. 그렇다면 20년은 언제일까요? 여기서 한 해가 갈립니다. 즉위년 계산 방식 때문입니다.

페르시아·바빌로니아식
즉위년 방식

즉위한 해는 "즉위년"으로 따로 세고, 다음 니산월부터 1년으로 셈 → 20년은 BC 445/444년

유대식
비즉위년 방식

즉위한 해를 곧바로 1년으로 셈 → 20년은 BC 446/445년 쪽

느헤미야가 페르시아 궁정 관리였다는 점, 니산월 기준을 쓴 점을 보면 페르시아식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가 유대인으로서 유대식으로 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정직하게 말하면, BC 445년과 444년 중 어느 쪽인지 확정할 수 없습니다. 이 글은 양쪽을 모두 열어두고 진행합니다. 뒤에서 보시겠지만, 열어두어도 결론은 하나로 좁혀집니다.

날짜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느헤미야 2:1은 월(니산)만 기록하고 날짜를 적지 않았습니다. 고전적인 계산들(로버트 앤더슨, 해럴드 회너)은 "니산 1일이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일(日) 단위까지 계산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본문에 없는 가정입니다. 성경이 말하지 않은 것을 성경의 정확성의 근거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이 글은 일 단위 계산을 시도하지 않습니다. 연 단위로만 논증합니다. 뒤에서 보시겠지만,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4부
예언년

예언의 1년은 360일입니다

왜 365일이 아닌가

가장 흔한 반론이 여기서 나옵니다. "360일 년은 계산을 맞추기 위해 지어낸 것 아닌가?" 만약 성경이 다니엘 9장에서만 360일을 쓴다면 정당한 비판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창세기 — 성경의 첫 책

  • 물이 시작된 날: 둘째 달 십칠일 (창세기 7:11)
  • 물이 불어난 기간: 백오십 일 (창세기 7:24)
  • 방주가 멎은 날: 일곱째 달 십칠일 (창세기 8:4)

둘째 달 17일부터 일곱째 달 17일까지는 정확히 5개월입니다. 그리고 그 기간이 150일로 명시됩니다. 150 ÷ 5 = 30. 한 달은 30일입니다.

요한계시록 — 성경의 마지막 책

표현구절
마흔두 달계시록 11:2, 13:5
천이백육십 일계시록 11:3, 12:6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3년 반)계시록 12:14, 다니엘 7:25

42개월 = 1,260일. 1,260 ÷ 42 = 30. 3년 반 = 1,260일. 1,260 ÷ 3.5 = 360. 산술적으로 다른 해가 없습니다. 한 달은 30일, 1년은 360일이어야만 세 표현이 동시에 성립합니다.

다니엘 자신도 씁니다

다니엘 7:25, 12:7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같은 단위입니다. 다니엘 12:11~12의 1,290일과 1,335일도 30일 월을 전제한 값입니다. 성경의 첫 책, 다니엘서, 마지막 책이 모두 같은 단위를 씁니다. 다니엘 9장을 위해 만들어진 규칙이 아닙니다.

정직한 단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어야 합니다. 실제 유대 달력은 360일이 아니었습니다. 유대력은 태음태양력이었고, 계절과 어긋나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윤달(제2아달월)을 넣었습니다. 그러므로 360일 년은 "당시 유대인들이 실제로 쓰던 달력"이 아니라 성경 예언 문학이 사용하는 정형 단위입니다.

이것이 약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이 자기 예언을 자기 단위로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단위가 다니엘 9장을 위해 사후에 도입된 것이 아니라,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일관되게 쓰인다는 사실입니다.

483년 × 360일 = 173,880일 ≈ 476 태양년
70 이레 연대표
칙령에서 메시아까지 — 69 이레(483 예언년 = 476 태양년)의 배열
5부
계산

산술

173,880 ÷ 365.2422 ≈ 476.07년

출발점에 476년을 더합니다. 이때 BC 1년과 AD 1년 사이에 0년이 없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BC에서 AD로 넘어갈 때 한 해를 빼야 합니다.

출발점+ 476년도착
BC 445년 니산월AD 32년
BC 444년 니산월AD 33년

즉 다니엘의 예언은 AD 32~33년을 가리킵니다.

만약 365일 년으로 계산한다면

정직하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483년을 태양년으로 그대로 세면 BC 444년 + 483년 = AD 40년이 됩니다. 예수님의 생애와 맞지 않습니다.

즉 360일 단위는 결과에 결정적입니다. 그래서 앞 4부의 논증이 중요합니다. 이 단위가 성경 내부에서 독립적으로 확립되지 않았다면 이 계산은 순환논증이 됩니다. 확립되어 있기 때문에 성립합니다.

6부
천문학의 검증

계산이 아니라 관측으로

십자가의 조건

복음서는 예수님이 유월절, 곧 니산월 14일에 돌아가셨고 그날이 금요일이었다고 기록합니다(요한복음 19:14, 19:31, 마가복음 15:42). 그런데 유대력의 각 달은 초승달 관측으로 시작됩니다. 달의 운행은 물리 법칙을 따르므로 역산할 수 있습니다.

재구성 결과

옥스퍼드의 콜린 험프리스와 그레이엄 워딩턴이 1983년 『Nature』에 발표한 계산은 널리 인용됩니다. 빌라도 총독 재임기(AD 26~36)의 니산 14일을 복원한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연도니산 14일 (율리우스력)요일
AD 264월 21일
AD 274월 10일
AD 283월 30일
AD 294월 18일
AD 304월 7일
AD 313월 27일
AD 324월 14일
AD 334월 3일
AD 343월 24일
AD 354월 12일
AD 363월 31일

유월절이 금요일이었던 해는 AD 30년과 AD 33년, 둘뿐입니다.

두 조건의 교집합

다니엘의 계산
AD 32 · 33
천문학
AD 30 · 33
교집합
AD 33년 하나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두 자료는 완전히 독립적입니다. 다니엘서는 BC 6세기의 히브리 문헌이고, 천문 계산은 20세기의 물리학입니다. 어느 쪽도 다른 쪽을 참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답이 하나로 겹칩니다.

AD 32년 계산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 점은 정직하게 밝혀야 합니다. 100년 넘게 널리 인용되어 온 로버트 앤더슨의 계산(BC 445년 → AD 32년)은 천문학적으로 성립하지 않습니다. AD 32년의 유월절은 월요일이었습니다.

한국과 영미권의 여러 변증 자료가 여전히 AD 32년을 제시합니다. 이 글은 그 계산을 채택하지 않습니다. 논증이 틀린 곳에서는 틀렸다고 말하는 편이, 나중에 지적당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보조적 정황: 공생애의 길이

결정적이지는 않지만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자료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3:1은 세례 요한의 사역 시작을 "티베리우스 카이사르가 통치한 지 십오년"으로 기록합니다. 로마식 계산으로 대략 AD 28~29년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 공생애 중 유월절이 최소 세 번 등장합니다(2:13, 6:4, 11:55). 5:1의 "명절"을 유월절로 보면 네 번입니다. 곧 공생애는 최소 2년 이상, 통상 3년 이상으로 봅니다. 요한이 AD 29년에 시작했다면 십자가는 AD 32~33년 쪽이 자연스럽습니다. AD 30년이 되려면 공생애를 1년 미만으로 압축해야 합니다.

다만 티베리우스 15년의 기산법에는 이견이 있어 이것만으로 AD 30년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보조 자료로만 제시합니다.

다니엘의 계산과 천문학의 교차점
독립적인 두 자료가 겹치는 단 하나의 해 — AD 33년
7부
어순

"메시아가 오시고" 그 "후에" 끊어지심

본문의 어순은 정확합니다.

  • 9:25 — 명령으로부터 "통치자 메시아에게 이르기까지" 69 이레
  • 9:26 — "육십이 이레 뒤에" 메시아가 끊어짐

즉 69 이레의 종점은 메시아의 죽음이 아니라 메시아의 오심입니다. 죽음은 그 후에 일어납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 예언이 요구하는 사건이 두 개이기 때문입니다.

  1. 메시아가 통치자로 나타나심
  2. 그 후 끊어지심

AD 33년의 유월절 주간에 이 두 가지가 며칠 간격으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셨고, 무리는 그를 왕으로 맞았습니다.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스라엘의 왕이여, 복이 있도다

— 요한복음 12:13

그리고 같은 주간의 금요일에 처형당하셨습니다.

"자기를 위한 것은 아니니라"

26절의 이 구절은 히브리어로 וְאֵין לוֹ(베엔 로) — 직역하면 "그리고 그에게 아무것도 없다"입니다. 번역이 갈리는 구절입니다.

  •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KJV·흠정역)
  •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일부 현대역)

어느 쪽으로 읽어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끊어지는 메시아는 자기 유익을 위해 죽지 않습니다. 왕좌를 얻지 못하고, 나라를 세우지 못하고,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끊어집니다.

이것은 당대 유대인이 기대하던 메시아상과 정반대입니다. 로마를 몰아내고 이스라엘을 세계 최강국으로 만들 왕. 그런 기대를 가진 사람이 이런 예언을 지어낼 이유가 없습니다.

8부
AD 70년

26절 후반 — 도시와 성소의 파괴

장차 임할 통치자의 백성이 그 도시와 성소를 파괴할 것이며

— 다니엘 9:26

AD 66년 유대 반란이 일어났고, AD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의 군단이 예루살렘을 함락했습니다. 성전은 불탔습니다. 요세푸스는 『유대 전쟁사』에서 그 참상을 기록했습니다. 성전은 지금까지 재건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순서가 결정적입니다.

  1. 메시아가 끊어짐
  2. 그 다음에 도시와 성소가 파괴됨

다니엘은 이 순서를 뒤집지 않았습니다. 메시아는 성전이 파괴되기 전에 와야 했습니다. 이것은 논증에 시한을 겁니다. AD 70년 이후에 나타나는 어떤 메시아 후보도 다니엘의 조건을 만족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하나가 더 있습니다.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이어야 합니다(사무엘하 7:12~16, 이사야 11:1). 그런데 혈통을 입증할 성전의 족보 기록은 AD 70년에 소실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누구도 다윗 혈통을 증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9부
반론

예상되는 반론 다섯 가지

변증의 가치는 반론을 얼마나 정직하게 다루느냐에 있습니다. 가장 강한 반론들을 그대로 옮기고 답하겠습니다.

반론 1. "다니엘서는 마카비 시대에 쓰인 위작이다"

비평학계의 다수 견해는 다니엘서를 BC 2세기,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의 박해기에 기록된 문헌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70 이레는 예언이 아니라 사후 기록이 됩니다. 이 해석은 "끊어지는 기름부음 받은 자"를 BC 171년에 살해된 대제사장 오니아스 3세로 봅니다.

답 1 — 산술이 맞지 않습니다. 이 해석은 490년을 채우지 못합니다. 예루살렘 함락(BC 586년)에서 안티오코스의 성전 모독(BC 167년)까지는 419년입니다. 성전 파괴(BC 586)에서 오니아스 살해(BC 171)까지는 415년입니다. 490년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 해석을 택하는 학자들은 대개 "다니엘이 연대를 잘못 알았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본문을 해석한 것이 아니라 본문이 틀렸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답 2 — 26절의 내용이 안티오코스와 맞지 않습니다. 다니엘은 도시와 성소가 파괴된다고 했습니다. 안티오코스는 성전을 더럽혔지만 파괴하지 않았습니다. 3년 뒤 마카비 형제들이 정결하게 하고 예배를 회복했습니다(하누카의 기원). 성전이 실제로 파괴된 것은 AD 70년입니다.

답 3 — 1세기 유대인들이 이미 로마에 적용했습니다. 요세푸스는 『유대 고대사』 10권에서 다니엘의 예언을 로마에 의한 파멸과 연결합니다. 그는 안티오코스 시대를 잘 알고 있었고, 마카비 사건도 상세히 기록한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다니엘의 이 예언이 안티오코스로 끝났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반론 2. "360일 년은 결과를 맞추려고 도입한 것이다"

답. 만약 다니엘 9장에서만 쓰인다면 타당한 비판입니다. 그러나 4부에서 보았듯 이 단위는 창세기 홍수 기록에서 산술적으로 도출되고, 요한계시록에서 42개월 = 1,260일로 못 박히며, 다니엘 자신도 7:25, 12:7, 12:11에서 씁니다. 다니엘 9장은 이 단위를 사용하는 여러 본문 중 하나일 뿐입니다.

반론 3. "출발점을 네 칙령 중 골라잡은 것 아닌가"

답. 선택 기준은 본문 자체입니다. 다니엘 9:25는 "거리와 성벽"이라고 명시했습니다. 성전이 아니라 도시입니다. 네 칙령 중 도시 재건을 다루는 것은 느헤미야 2장 하나뿐입니다. 나머지 셋은 그 자체로 성전 칙령임을 본문이 밝히고 있습니다(에스라 1:2~3, 6:3, 7:15~19).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역으로 확인해도 같습니다. 다른 칙령에서 483 예언년을 세면 BC 538년 → BC 62년, BC 520년 → BC 44년, BC 458년 → AD 18년입니다. 어느 것도 예수님의 생애에 닿지 않습니다.

반론 4. "AD 33년은 우연히 맞은 것이다"

답. 우연의 규모를 계산해보면 됩니다. 빌라도 재임기 11년 중 유월절이 금요일인 해는 2년입니다. 그중 다니엘의 계산 구간(AD 32~33년)과 겹치는 해는 1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요구되는 것은 연도만이 아닙니다.

  • 그 해에 한 인물이 예루살렘에서 왕으로 영접받아야 하고
  • 며칠 뒤 처형되어야 하며
  • 그 처형이 아무것도 얻지 못한 죽음이어야 하고 (26절)
  • 그 이후 성전이 파괴되어야 합니다 (26절 후반)

각 조건은 독립적입니다. 확률은 곱해집니다.

반론 5. "당시에 메시아를 자처한 사람은 많았다"

이 반론은 부분적으로 옳습니다. 1세기 전후에 메시아적 인물은 여럿 있었습니다. 갈릴리 사람 유다(AD 6), 드다, "이집트인"(AD 50년대), 그리고 바르 코크바(AD 132~135).

답. 그러나 다니엘의 조건은 "메시아를 자처했는가"가 아닙니다. 조건은 네 개입니다.

  1. 정해진 시점(AD 33년)에
  2. 예루살렘에서 왕으로 영접받고
  3. 그 후 끊어지되
  4. 그 죽음이 아무것도 얻지 못한 죽음일 것

갈릴리 유다는 AD 6년에 봉기하다 진압되었습니다 — 시점이 27년 이릅니다. 드다와 이집트인은 AD 45~60년경입니다 — 시점이 늦습니다. 바르 코크바는 AD 135년에 전사했습니다 — 성전 파괴 이후이고, 다니엘의 순서를 위반합니다.

AD 33년 유월절 주간에 예루살렘에서 왕으로 영접받았다가 처형당한 인물은 한 사람뿐입니다.
10부
마지막 한 이레

69 이레는 끝났고, 70번째가 남아 있습니다

27절은 이 마지막 이레에 대해 말합니다. 한 통치자가 많은 사람과 언약을 맺고, 그 이레의 한중간에 그것을 깨고 희생 제사를 그치게 합니다. 여기서 해석이 갈립니다.

해석 A
연속설

70번째 이레가 69 이레 직후에 이어졌고, 예수님의 공생애와 초기 교회 시기에 성취되었다고 봅니다. 언약을 확정하신 분이 그리스도이고, 십자가로 희생 제사가 그쳤다고 읽습니다.

해석 B
공백설

69 이레와 70 이레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으며, 마지막 이레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봅니다. 26절이 메시아의 끊어짐과 AD 70년 성전 파괴를 언급한 뒤 27절로 넘어가는 구조를 근거로 삼습니다.

이 글은 어느 쪽도 논증의 근거로 삼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69 이레의 성취는 두 해석 모두에서 동일하게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이레의 해석은 이 예언이 이미 성취된 부분의 신뢰성과 무관합니다.

다만 하나는 분명합니다. 69 이레는 이미 끝났고, 그 종점에 한 사람이 서 있습니다.

11부
한 사람

이 예언 앞에 선 한 유대인

야콥 담카니
야콥 담카니 — 메시아닉 쥬

야콥 담카니는 이스라엘 청년이었습니다. 삶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고, 종교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한 그리스도인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설교하지 않고 다니엘 9장을 펼쳤습니다. 자기 민족의 경전이었습니다. 회당에서 읽던 두루마리였습니다.

그 안에 계산이 있었고, 그 계산의 종점에 자기 민족이 2천 년간 거부해온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는 지금 "구원의 나팔"이라는 사역을 통해, 예수라는 이름을 가장 격렬하게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름을 전하고 있습니다.

맺음
정리

맺으며

다니엘서는 예수님보다 수백 년 앞서 기록되었습니다. 그 안에 출발점(예루살렘 재건 명령)과 기간(69 이레)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계산은 AD 32~33년을 가리킵니다. 출발점 연대에 한 해의 불확실성이 있지만, 그 불확실성을 그대로 두어도 구간은 두 해뿐입니다.

천문학은 그중 AD 33년만을 허용합니다. 유월절이 금요일이었던 해는 AD 30년과 33년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AD 33년에,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 왕으로 영접받았다가 며칠 뒤 처형당했습니다.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였습니다. 그로부터 37년 뒤 도시와 성전이 파괴되었습니다. 다니엘이 적어둔 순서 그대로였습니다.

저자의 개인적 확신

여기까지는 자료로 검증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제 믿음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쓰겠습니다.

저는 이 예언이 연도가 아니라 날짜까지 정확했다고 믿습니다. 다니엘이 "이레"라는 정밀한 단위를 쓰고 느헤미야가 "니산월"이라고 달까지 적어둔 것을 보면, 하나님이 연도 정도로 만족하실 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것은 논증이 아니라 신뢰입니다. 느헤미야 2:1이 날짜를 적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그 날을 계산할 수 없습니다. 계산할 수 없는 것을 계산했다고 주장하지 않겠습니다.

논증은 연도에서 멈추고, 신뢰는 그 너머로 갑니다. 이 둘을 섞지 않는 것이 정직한 변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요한복음 5: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하고 있는데,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증언하는 것이다."